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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難讀日記(난독일기)] 불로초(不老草)가 아닙니다

 

 

 

그런 날이 있습니다. 무얼 해야 할지, 왜 해야 할지, 텅 비어버린 날 말입니다. 껍데기만 살아 펄럭거리는 하루는 시간을 삼키는 종이인형 같습니다. 인형이 삼켜버리는 시간 때문일까요. 봄이 찾아왔지만, 사람들은 봄을 맞을 겨를도 없이 겨울을 삽니다. 세상은 ‘확진’과 ‘격리’의 틈에서 몸살을 앓습니다. 약기운인지, 봄기운인지. 거리에는, 계절을 따라 걷지 못하고 주저앉은 그림자로 가득합니다. 애써 길을 걸어도 보이는 건 겨울뿐입니다.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아무리 찾아도, 왔다는 봄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다시 봄입니다. 움트고 싹트는 것들로 세상은 천지가 젖몸살입니다. 몸살꽃 이파리는 저물고 뜨는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돋아납니다. 저무는 것과 뜨는 것들이 경계의 이쪽과 저쪽에서 요란합니다. 삼월의 낮과 밤이 덩달아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하늘과 땅에서 잠들었던 봄이 실눈을 뜹니다. 저무는 것들이 흘린 눈물에서 뜨는 것들의 생명이 잉태합니다. 씨에서 싹이 트고 알에서 새끼가 깨어납니다. 흙에서 눈을 뜬 것들은 하늘로 줄기를 뻗고, 물에서 숨을 튼 것들은 바다를 향해 꼬리를 흔듭니다. 새는 날개를 펴고, 꼬리를 접은 올챙이는 네 발로 걷습니다.

 

다시 봄입니다. 울어대는 것들로 세상은 천지가 눈물바람입니다. 이슬을 머금은 꽃은 아침에 울고, 짝을 찾는 개구리는 저녁에 웁니다. 물에 살든 땅에 살든 마찬가지입니다. 발이 없는 것들은 바닥을 뒹굴며 울고, 발이 있는 걷는 것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웁니다. 도시에 사는 것들이라고 다를 게 없습니다. 눈만 뜨면 들리는 것이 두 발로 걷는 동물들의 울음소리입니다. 지구라는 별은 지금 거대한 초상집입니다. 600만 명의 사람이 코로나19로 죽었고 4700만 명이 감염되어 앓고 있습니다.

 

다시 봄입니다. 죽고 죽이는 전쟁으로 세상은 곳곳이 피범벅입니다. 자연이 사람을 벌하는 것이 전염병이라면, 전쟁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행위입니다. 전쟁과 살인은 대자연의 법칙마저 끊어놓습니다. 저문 것 속에서 떠오르고, 시든 것 속에서 태어나는, 우주만물의 섭리를 거역합니다. 사람은 대자연의 법칙에 따라 탄생한 작은 우주입니다. 인류라는 우주에 속한 별똥별입니다. 삶과 죽음은 각각의 별똥별에 주어진 불씨입니다. 아직 시들지 않은 별똥별의 불씨를 꺼트릴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피었다가 지는 것은 꽃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영원히 살고 싶었던 진시황(秦始皇)도 결국 길에서 죽었습니다. 불로초(不老草)는 세상에 없습니다. 늙지 않고 끊임없이 증식하는 세포 또한 사람의 몸에는 없습니다. 있다면 딱 하나, 사람을 죽이는 암세포는 늙지 않고 영원히 증식합니다. 영원히 증식하는 암세포는 사람 안에만 있지 않습니다. 인종과 언어와 종교와 문화와 국력을 빌미로 자행되는 차별과 혐오가 그것입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것이 삶입니다. 지는 것이 두렵다고 암세포로 살지는 말아야 합니다.

 

암세포는 불로초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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