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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 예술기행] 알퐁스 도데와 퐁비에이유

 

“거긴 가지 말아요! 그 나쁜 놈들은 빵을 만드는데 악마가 발명한 수증기를 사용한단 말이오. 하지만 나는 하느님의 숨결인 북풍과 동풍을 이용해 일을 하고 있소.”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풍차방앗간의 편지(Les Lettres de mon moulin)』다. 어두운 파리와 빛나는 프로방스를 대비시킨 이 단편은 도데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이 소설의 무대는 프랑스 남쪽 끝 퐁비에이유(Fontvieille).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의 무대인 아를(Arles)과 길쌈의 마을 파라도(Paradou) 사이에 있다. 옛날에 이곳엔 풍차방앗간이 많았다. 프로방스 사람들이 밀방아를 찧어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파리에서 온 사람들이 기계방앗간을 세우면서 풍차방앗간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웬일인가. 언덕 위의 코르니유(Cornille) 영감님 풍차방앗간은 돌아갔다. 이 영감님은 빈 방아를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비밀을 안 마을사람들은 모든 밀을 코르니유 영감님께 가져가기 시작했다. 그 후 이 영감님은 절대로 일이 떨어지지 않았다. 시골사람들의 인정과 의리가 산업화와 기계문명의 거대한 회오리를 막아낸 감동의 대서사시다.

 

 

프랑스 남쪽 끝 님(Nîmes)에서 태어나고 자란 도데. 청년기 파리로 가 기자생활을 하지만 계산적인 도회지를 못 견뎌했다. 어느 날 그는 노벨문학상을 탄 당대 최고의 작가 프레데릭 미스트랄(Frédéric Mistral)을 만나러 퐁비에이유에 갔다. 도데는 순진하고 목가적인 이곳에 그만 빠져들었다. 그 후 이 마을을 열심히 찾아갔고 쌩 삐에르(Saint Pierre) 풍차에 올라 퐁비에이유 전경을 응시하곤 했다. 쌩 삐에르 풍차는 훗날 ‘도데의 풍차’로 재탄생했다. 『풍차방앗간의 편지』에는 몽토방 성(Château de Montauban)도 등장한다. 이 성은 퐁비에이유에 있는 실제 성이다. 아름답고 고요해 도데는 이곳에서 휴양을 즐기곤 했다. 역사가 물씬 묻어있는 몽토방. 지금도 퐁비에이유의 명물로 많은 관광객의 총애를 받는다.

 

1897년 도데는 죽었고 파리 20구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알퐁스 도데 사모회’는 1935년 퐁비에이유 ‘도데의 풍차’를 뮤지엄으로 만들었다. 『풍차방앗간의 편지』의 작가를 추모하고 옛사람들의 직업을 길이길이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도데는 성장기 친하게 지낸 자연과 지중해를 잊지 못하고 그 감성을 녹아낸 특유의 글들을 썼다. 그의 글들은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녹아들어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과 소리 없는 교훈을 준다. 그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았던 시골 포도주, 여흥 등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소설로 재생산했다. 이러한 그의 문화유산은 프로방스 아이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정신을 살찌운다. 한국인들은 도데의 『마지막수업』과 『별』을 유독 좋아한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회오리바람 앞에 서 있는 지금 『풍차방앗간의 편지』를 일독해 보길 권한다. 올여름방학에 아이들 손을 잡고 ‘도데의 풍차’를 찾아 퐁비에이유로 떠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해답을 찾을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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