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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형의 생활여행] 스며드는 사월

 

 

 

꽃비가 내릴 땐 세상이 고요해진다. 사락사락 떨어지는 꽃잎은 숨죽여 바라볼 만큼 아름답지만, 이유 모를 슬픔도 따른다. 4월은 아름다움과 서글픔이 공존하는 달이다.

 

4월 3일 제주에서는 짧게 사이렌이 울렸다. 4월 15~16일에는 경기도교육청의 각 기관과 학교에서 사이렌이 울릴 예정이다. 제주도에선 붉은 동백이 바닥으로 툭, 툭 떨어졌고 경기도에선 노란 리본이 나무에서 흔들렸다. 추모는 4월 내내 이어진다.

 

가장 멀고 소외된 지역에서 피어난 어둠은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드러나지 않았다. 실시간 정보가 다양한 채널로 빠르게 전달되는 시대에도 똬리를 튼 어둠은 배를 침몰시켰다. 깊숙한 동굴에서, 깊은 바다에서 가장 순박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속절없이 사라졌다.

 

꽁꽁 감춰졌던 일들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알린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번져갔다. 세계적인 관광지를 여행하던 사람들은 붉은 동백 뺏지를 받고 제주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음을 알게 됐고, 거리를 걷던 이들은 무료로 받은 노란 리본을 가방에 매달았다. 유행처럼 번져나간 물결이 묻혀있던 역사를 서서히 밝혔고, 사람들은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다가 퍼뜩 잊지 않겠다 다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다크투어리즘은 어둡고 아픈 시대를 겪은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이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약 400만 명이 학살당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미국 대폭발 테러사건(9·11테러)의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부지 그라운드 제로, 약 200만 명의 양민이 학살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유적지 등이 다크투어리즘의 대표적인 장소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강점기의 서대문형무소, 분단의 현장인 DMZ, 제주 4·3 평화공원 등이 포함되며, 제주에서는 송악산, 정방폭포 등 경관이 빼어난 관광지에서도 다크투어리즘 안내문을 통해 그곳에서 일어난 아픈 역사를 인지할 수 있다.

 

문화, 예술과 같이 여행 역시 가장 어둡고 아픈 곳으로 찾아가 그 어둠을 알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억하게 해준다. 숱한 아티스트의 추모곡이, 글이, 그림과 사진과 극이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하며, 유명한 관광지로 찾아간 곳의 다크투어리즘 스탬프투어가 무지를 깨운다.

 

74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은 참상이 있고, 8년이 지나도록 원인조차 알 수 없는 참사가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을 우리는 몰랐다. 눈앞에서 배가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우리는 정확한 상황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찾아가고 기억한다면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다.

 

꽃은 지고 봄도 지나간다. 기억은 새로운 일들에 밀리고 잊힌다. 그래도 봄은 해마다 다시 돌아온다. 꽃이 피고 꽃잎이 바람결에 흩날릴 때, 아름답고 잔혹한 4월이 스며든다. 잊지 말라고, 기억하라고 고요히 속삭인다./자연형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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