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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칼럼] 쇼크독트린과 아큐정전

 

 

1.

『쇼크독트린(The Shock Doctrine : The Rise of Disaster Capitalism)』은 캐나다 출신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나오미 클라인이 쓴 책이다. 자연발생적 혹은 계획에 따른 구조적 충격을 발생시켜 특정국가에서 극단의 이익을 탈취하는 다국적 자본의 활약상을 다루고 있다. 발간된 지 10여 년이 훌쩍 넘은 책이지만 함의가 늘 새롭다. 그래서 수시로 서가에서 꺼내 펼친다.

 

이 책은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무기로 하는 글로벌 독점자본들이 남미, 동유럽, 아프리카, 중동 등에서 저지르는 폭력적 욕망을 영화처럼 펼쳐 보인다.

 

1973년 CIA와 합작으로 민주주의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린 피노체트의 쿠데타. 덩샤오핑 집권기에 일어난 1989년의 천안문 사건. 1991년 몰아닥친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그리고 2003년 발발한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대내외적 쇼크(충격요법)와 위기 조성을 통해 압도적 부를 긁어모으는 그들만의 은밀한 작동방식이 폭로되어 있다. 다국적 자본의 금고로 전 세계 민중의 고혈이 꿀로 바뀌어 흘러드는 마술 말이다.

 

 

2.

『쇼크독트린』에는 1997년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IMF 구제금융 사태 이야기도 나온다. ‘아시아의 호랑이’로 칭송되던 신흥 경제강국 한국을 쓰나미처럼 휩쓸어버린 외환쇼크. 그것이 미국과 그 대리인(agent)으로서 IMF가 치밀하게 사전 계획한 약탈행위의 결과물이라는 고발장이다.

지난 시절 저 미증유의 경제위기가 각 가정마다 얼마나 많은 비극을 양산시켰던가. 그러한 가운데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필자가 특히 주목한 대목이 있었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수탈의 핵심 도구로 동원되는 것이 검은 것을 희다고 믿게 만드는 이데올로기 선전/선동이라는 설명이다.

 

왜곡된 정보 주입을 통해 세상에 대한 눈을 흐리게 만드는 설득작업. 이 정교한 세뇌를 통해 피지배 계층이 거꾸로 극소수 부유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지지하고 착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두 마리 뱀처럼 똬리를 튼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과 권위주의 정치 체제를 서민과 무산자(無産者)들이 앞장서서 받아들이는 과정을 이 책은 충격적으로 묘사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 머리를 채우는 것은 역시 지난달 끝난 대선 결과다. 많은 이들이 더불어민주당의 뒷심 부족을 비판했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원 부족을 원망했다. 하지만 선거 패배의 원인이 과연 그런 것뿐이었을까.

 

 

3.

나오미 클라인은 1997년 한국의 경제적 몰락을 외세 자본의 정교한 플랜에 따른 결과물이라 갈파한다. 하지만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IMF 사태의 원인에 대하여 우리 내부 책임에 더 큰 방점을 찍어왔다. 결국 문제 발생과 위기의 근원(根源)을 제공한 것은 한국인들이었던 게다.

 

어쩌면 이번 대선도 그러한 유사 구조가 작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선거 결과가 나온 후 개혁지향 시민들이 집단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충격을 받은 이유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절대로 안 진다는 일종의 신기루 같은 확신이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었을 게다. 3월 10일 새벽 그러한 확신이 허망하게 무너진 순간, 우리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숨겨진 본질을 선명하게 목도한 것이다.

 

굳이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들먹일 것도 없다. 기득권 이데올로기에 침윤되어 (부동산 폭등 등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응징투표를 감안한다 해도) 종국에는 격심한 양극화의 악몽을 초래할 이른바 ‘계급배반투표’를 사회적 취약계층이 대거 감행한 것 말이다.

 

저소득 저학력층으로 분류되는 '월 200만 원 미만 소득' 계층에서 윤석열 후보를 선택한 비율이 (이재명 후보에 비해 1.7배가 넘는) 무려 61.3%에 달했던 것이다. 최상위 계층의 경제권력 독식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복지예산 축소, 노동유연화 정책이 확연히 예상되었음에도 어떻게 이런 투표가 가능했을까?

 

 

4.

다음 달 정권 출범을 앞두고 윤석열 당선인이 강공을 취하고 있다. 검언유착 혐의로 형사 피의자가 되었고, 끝까지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공개하지 않았던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었다. 집권 초기부터 검찰 통치의 칼날을 휘두르겠다는 명확한 의사 표시다.

 

당선 일성으로 협치와 통합을 외쳤던 인물로서는 기대 밖의 행보다. 이 도발적 시도로 인해 국회 제1당 더불어민주당은 격앙일로에 돌입했다. 새 정권이 출범하기도 전에 포연이 자욱해지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다시 씁쓸한 기분으로 내발적 책임론을 떠올린다. 물 한 모금 없는 사막에 씨를 뿌린다고 어찌 열매가 맺겠는가. 합리적 분배와 평화의 꽃을 피우는 것도 억압과 소외의 독버섯을 키우는 것도, 결국 시민의식이란 이름의 텃밭인 것이다.

 

정치, 경제, 통일, 민권의 모든 이슈를 산산조각 내는 미친바람 앞에 신나게 박수 치고 춤을 추는 사람들. 곧 자기에게 돌아올지도 모르는 파시즘의 올가미를 목에 휘감는 사람들. 스스로 심장 베어내는 자의 손에 기꺼이 칼을 쥐어준 사람들이 누구를 원망할 수 있으랴.

 

루쉰이 '아큐정전'을 발표한 해가 서기 1921년이다. 일그러진 세상의 칼날이 자기 목을 자르고 있음에도, 눈 멀뚱멀뚱 뜬 채 이유도 모르고 죽어간 아큐. 나는 요즘 우리들 얼굴 위에 그의 얼굴이 겹쳐지는 악몽을 자주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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