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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술과 섹스가 사라진 홍상수 월드

65. 소설가의 영화 - 홍상수

 

우리는 언제까지 홍상수의 영화를 기록해야 하는가. 그 기록의 행위는 기쁨과 환희인가, 아니면 고통인가, 혹은 지루함인가. 이것도 저것도 모두 아니고 혹시 깨달음, 통찰 같은 것은 아닌가.

 

이번 신작 ‘소설가의 영화’는 통산 그의 32번째 작품(단편, 다큐 참여 포함)이고 그건 그가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해 26년간 거의 매년 한 편 혹은 두 편을 만들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상수처럼 끊임없이 작품을 쏟아 내는 마에스트로급 감독은 한국에도 유럽에도 미국에도 없다. 그에게 있어 영화란 일종의 일기 같은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막 영화 한 편을 끝내고 회식 비슷한 자리에서도 갑자기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아, 영화 찍고 싶어”.

 

‘소설가의 영화’는 최근의 전작과 이어질 듯 말 듯 한다. 인물들이 그렇다. ‘소설가의 영화’의 주인공 준희(이혜영)는 바로 직전의 작품인 ‘당신얼굴 앞에서’에 나오는 상옥(이혜영)일 수 있다. 상옥은 오랜만에 귀국해 동생 정옥(조윤희)의 집에서 살아간다. 그녀는 그때 영화감독 재원(권해효)을 만나게 되는데, 감독은 그녀의 이런저런 삶의 얘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그녀에게 하루 조용히 여행을 다녀오자고 하는데, 그게 유혹인지 아니면 영화를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을 위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재원과 상옥은 술을 마신다. 하지만 감독은 다음 날 그녀에게 같이 어디 좀 다녀오자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술이 취했을 때와 깼을 때의 마음은 다르기 마련이다. 재원도 갑자기 예상되는 혼외정사가 두려워졌을까. 남자가 이런저런 변명을 하는 전화를 받은 후 여자는 미친 듯이 깔깔댄다.

 

 

‘당신얼굴 앞에서’의 상옥과 재원은 ‘소설가의 영화’에서 준희와 박 감독으로 다시 만난다. 아니,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보인다. 하남시의 어느 타워 전망대에 간 준희(이혜영)를 박 감독의 와이프(조윤희)가 알아채고 말을 건다. 화장실 기둥 뒤에 숨어 있던 박 감독(권해효)은 마지못한 듯 준희, 와이프와 함께 전망대 통유리 앞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신다.

 

박 감독은 밖을 내다보는 준희에게 작은 망원경을 빌려준다. 준희는 그걸로 밑을 내려다보면서 “이렇게 보니 저 밑 공원이 다 보이네”라고 말한다. 셋은 밑에 공원을 걸어 보기로 하고 내려갔다가 산책 중인 여배우 길수(김민희)와 우연히 부딪힌다. 준희는 박 감독이 배우 길수를 두고 하는 말 때문에 갑자기, 버럭 화를 낸다. 감독 부부는 약간 기분이 상해서 가고 준희와 길수만 남아 둘이 얘기를 나눈다. 얘기가 길어져 준희와 길수는 밥을 같이 먹는다. 그리고 둘 다 아는 사이인 북 카페 주인(서영화)과 시인 선배를 만나(기주봉) 막걸리를 마신다.

 

준희는 소설가이다. 근데 준희는 길수에게 같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어떤 영화냐고 사람들이 묻고 시인 선배가 이런 얘기 어떠냐고 자신의 얘기를 하려고 하자 준희는 화를 내며, 김 빼지 말라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 줄거리를 언뜻 비친다. 그게 바로 홍상수의 또 다른 전작인 ‘도망친 여자’이다. 홍상수의 영화는 그렇게 씨줄 날줄처럼 아닌 듯, 혹은 그런 듯, 서로 연결돼 있다.

 

 

이번 ‘소설가의 영화’에서 홍상수는 자신의 생각을 공격적으로 드러낸다. 영화 속에서 공원을 걸으려다 만나게 된 여배우 길수와 얘기를 나누다가 준희가 불같이 화를 내는 대목은, 박 감독이 길수더러 왜 영화 출연 활동을 안 하냐며 그건 너무 아까운 일이라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준희가 소리친다. “뭐가 아깝다는 거지? 아까운 게 뭐지? 다 성인이잖아. 아깝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의 행동이 이미 잘못돼 있다는 걸 전제로 하는 거잖아”. 명백하게 이것은 배우 김민희가 자신과 혼외정사를 거쳐 동거인으로 살아가면서 홍상수 자신의 영화 외에는 그 어떤 활동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이런저런 ‘입방아’를 염두에 둔 공식적인 발언이다.

 

준희가 자신의 소설 작업에 대해 얘기하는 대목은 홍상수 스스로의 근황을 고백하는 것처럼 보인다. 준희는 시인 선배에게 말한다. “더 이상 글이 안 써져요. 이제 그만 글을 내려놓아야 하나 봐요”. 타워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밑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보니 다 보이네”라고 얘기하는 것도 (글이 써지든 안 써지든, 영화가 만들어지든 안 만들어지든)영화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란 게 늘 렌즈를 통해서일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소설가의 영화’에서 홍상수는 김민희에게 ‘영화적’으로 결혼식을 올려준다. 그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고 의외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가 얼마나 개인화할 수 있는가, 개인화하는 것이 맞는가, 가장 개인적인 것이 세상사의 보편과 어떻게 맞닿게 되는가. 근데 과연 그럴 수는 있는가. 영화는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자유로워야 하는가. 그것도 뼛속 깊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홍상수 영화의 기본 핵심은 철저한 탈정치화이다. 그는 결코, 단 한마디도, 정치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바로 그 점이 ‘매우 정치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정치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음으로 현실 정치를 능멸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홍상수식 정치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정치가 쓰레기 같으면 한마디도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보다는 ‘한 명의 여자에게, 하나의 일상적인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더 옳다’고 홍상수는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삶은 김민희에게 기울어져 있고, 그의 영화는 김민희와 관련된 사소한 이야기들이 모티프가 되고 있다. 근데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상한 통찰의 무엇을 준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끝없는 이중성과 위선, 그 안의 불안과 초조 사이에 삶과 세상의 진실이 숨어 있다고 홍상수는 얘기한다. 엉뚱한 사회정치 이론이나 현실에는 그 답이 없다는 것인바, 쓸 데 없는 짓 좀 그만하고 살라는 것이다. 너무나 세세한 개인사여서 미니멀리즘의 극단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홍상수 영화의 작은 구멍, 작은 망원경의 렌즈를 통해서는 세상이 좀 더 잘 보일 때가 많다. 사람들이 홍상수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일 수 있다.

 

‘소설가의 영화’에서 소설가 준희는 이제 소설 대신 다른 작법을 지닌 영화를 택한 셈이 됐다. 이건 홍상수가 앞으로는 조금 다른 영화를 찍을 수도 있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실제로 그의 영화는 점점 ‘마일드’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 속 박 감독도 자신이 ‘좀 변한 것 같다’고 말한다. 일례로 홍상수의 영화에서 섹스가 사라졌다. 과도한 음주가 사라졌다. 홍상수 영화에 술과 섹스가 사라지는 건, 홍상수 스스로 삶의 날을 의도적으로 무디게 하려는 계획처럼 느껴진다. 대신 그의 영화는,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다소 지루해진 면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영화에 술과 섹스가 나오는 것이 좋다. 사람들마다 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한 편의 영화로 숱한 대화를 나누고 논쟁을 하게 되는 영화, 그게 바로 홍상수이다. 이번 영화도 그 범주에 들어 있는 작품이다. 길수와 준희가 밥을 먹을 때 왜 길수는 비빔밥을 먹고 준희는 라면을 먹을까. 둘이 밥을 먹을 때 창 밖에 서 있는 여자아이는 누구일까. 어떤 존재일까. 그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것 등등이다. 또 한 번 ‘홍상수 월드’를 경험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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