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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형의 생활여행] 경계를 흐리는 여행

 

 

 

빛의 벙커에서는 자신의 경계가 흐려진다. 캔버스를 벗어난 그림이 벽과 바닥을 넘어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까지 물들이기 때문이다. 온 공간을 채운 예술 속에선 사람도 예술이 된다. 몰입형 미디어아트의 본질이다.

 

미디어아트란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수단인 사진, 영화, TV, 비디오, 컴퓨터 등 대중에게 파급효과가 큰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미술에 적용시킨 예술을 의미한다. 미디어아트는 정적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감각에 직접 호소하며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몰입형 미디어아트가 처음으로 한국에 정착한 곳은 제주였다. 넓은 공간과 장기간의 전시, 꾸준히 찾아올 사람들이 필요했기에 늘 관광객이 많은 제주가 적합했다. 한국 안에서 가장 멀리 떠나온 사람들은 궂은 날씨에도 찾아갈 만한 실내관광지를 원했고, 독특하고 신선한 체험을 바랐으며, 조건만 맞는다면 제주 어느 곳이든 찾아가려 했다. 2018년, 국가 기간 통신시설이었던 9백 평 면적의 철근 콘크리트 건축 구조물에 빛과 색이 들어섰다. 자연 공기 순환방식을 이용해 쾌적한 온도가 유지되고 외부의 빛과 소리가 완전히 차단되는 비밀벙커는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으로 관광객들을 맞이했다. 그렇게 미디어아트는 여행과 결합했다.

 

빛의 벙커가 성공한 이후, 스피커 제조 공간이었던 1400평의 부지에는 ‘영원한 자연’을 주제로 한 아르떼뮤지엄이, 서커스공연장으로 이용되던 1200평의 건물에는 어반 판타지 스토리텔링을 도입한 노형수퍼마켙이 들어섰다. ‘잊혀진 문’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신화, 설화, 상상 속 이야기가 펼쳐지는 다른 세계로 연결되며, 사람들이 제주의 색을 빨아들인 그 문 안쪽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노형수퍼마켙의 콘셉트는 미디어아트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색과 빛으로 인해 온전히 다른 세계를 빚어내고, 사람들은 그 세계로 흡입된다. 모네, 르누아르, 샤갈이 그려낸 풍경 속에서, 눈앞에서 떨어지는 8m 높이의 폭포와 유유히 흐르는 오로라가 보이는 해변에서, 세상에서 사라진 색이 장엄하게 펼쳐내는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그 세계의 일부가 된다. 새로운 세계를, 혹은 자기 자신을 여행한다.

 

여행은 본래 지금까지의 자신을 떠나 새로운 자신을 찾는 길이다. 팍팍한 삶 속에서 위축된 사람이 자신만 바라볼 때, 문제는 발생된다. 자신의 고통만을 크게 느끼고, 타인을 적으로,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곪아 간다. 자신의 경계를 흐리고 때때로 자신에게서 떠날 수 있을 때, 사람은 세상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무한한 확장성을 품고 수시로 변하는 공간은 일상을 떠나온 사람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줌으로써 켜켜이 쌓인 생활의 때와 피로를 씻고 새로운 기운을 얻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준다.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느라 몸이 굳어가고 있다면 새로운 세계로 떠나보자. 예술을 보고, 듣고, 예술이 되는 동안 어느새 삶이 조금 유연해질 테니./자연형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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