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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심우도] 심우도의 아지랑이-시인 지하 가던 날

 

칼럼 ‘심우도’를 시작할 때 쓴 글 한 대목이다. ‘... 손 모양 계(彐) 아래 만들 공(工)과 입 구(口)다. 다시 쓰면 左(좌)와 右(우)다. 아래는 손목에 점찍은 마디 촌(寸)이다. 어둠 속 안개바다를 좌우로 손 내밀어 나아가는 발걸음이다...’

 

‘심우도’는 만해(卍海) 한용운 선생을 생각하며 지은 이름이다. 연애편지 같은 시(詩)도 남겨 청춘남녀에게도 인기 높은 스님 만해, 뜻은 깊되 말은 쉽다. 큰 스승이다.

 

왜놈들 제국주의 아래서 치욕의 삶을 살았던 그의 집 이름이 심우장(尋牛莊)이다. 남향(南向) 피해 총독부와 등을 졌다. 절집 빙 둘러 바람벽에 그려진 심우도(尋牛圖) 그림과 뜻 같으리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에서 비롯해 끝내 아지랑이로 스러지는 모든 사물(一切 일체)을 담은 집이면 그건 우주다. 비유의 세계다. 아지랑이 같은 이 비유는 그 바탕이 그림이다.

 

‘안개바다를 좌우로 손 내밀어 한걸음씩 나아가는 발걸음’ 묘사는 찾을 심(尋)의 뜻을 추상화한 그림이다. 당신은 ‘찾는다’는 뜻을 어떻게 그릴까? 안개 속 헤매봤다면, 저 표현력을 실감할 수 있을 터. 글(文 문)을 깨친다는 것은 (文 속의) 그림을 본다는 뜻이라네.

 

뜻글자인 표의(表意)문자는 그림이다. 문자(한자)에서 그림 읽어내는 마음이 세상 이치 꿰는 공부인 이유다. 언중유골(言中有骨·말 속에 뜻 있음)과 언외지의(言外之意·말 밖에 숨은 뜻)가 끝내 하나임을 아는 것이다.

 

좌우로 손 저어 안개 속에서 ‘내 마음’(牛 소) 찾는 그림이 심우도다. 그림이 뜻이고 (그 디자인이) 문자(한자)다.

 

우리 글자 한글이 지닌 소리의 탁월한 기능에, 여러 뜻을 짊어지게 하고 붙들어 유지하게 하는 역할을 (그림으로 만든) 한자가 한다. 한국어의 중요한 요소인 한자어의 존재의의다.

 

세상의 모든 일(事 사)과 물건(物 물)을 그린 것이니, 그 구조와 상호작용을 궁리한다면 세상 본디를 아는 것이리라. 事物의 그림 도(圖 그림)의 철학적 의미다.

 

뿔 달린 소의 머리를 상징으로 빚은 것이 소 우(牛)다. 말 마(馬)가 갈기 휘날리는 멋진 질주임도 보자. 찾아보매, 한자사전 어원 해설의 갑골문 금문 전서(篆書) 등은 차라리 그림일세.

 

톺아보며 당신은 빙그레 미소 짓는다. 소가 내 마음을 비유하는 아지랑이인 것과 같다. 당신의 그 미소는 평화를 희원하는 명상의 화두다. 종교 이전의 인간학이다. 당신 마음속의 화가와 시인을 왜 진즉 몰랐던가. 사람이 꽃보다 곱다.

 

너와 나, 모두 존엄(尊嚴)이다. 경건하게 서로 섬기라. 길 떠난 우리의 시인 김지하가 남긴 ‘생명의 말씀’이겠다. 헤르만 헤세가 ‘유리알 유희’의 찻잔 뒤에 살며시 감춰둔 고결하고 이쁜 꽃(뜻)이기도 할 터다.

 

더 좋은(착한) 방법은 늘 있다. 생각에 게을러 볼 수 없었다. 지하와 헤세를 그리며 만해를 화엄(華嚴)하는, 오늘의 심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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