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제36대 경기도지사로 당선됐다. 그가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 소년에서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거쳐 경기도지사가 되기까지 걸어온 길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손오공의 ‘긴고아’ 같은 어려운 현실은 젊은 시절의 김 당선인을 옥죄었지만 그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던 밑바탕에는 다양한 시련을 극복하면서 얻은 값진 경험과 자기 자신에 대한 반란, 사회 변화 기여를 위한 확고한 꿈 등이 있었다.
◇ 판잣집 소년에서 부총리 거쳐 경기도지사에 이르기까지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 소년에서 출발해 성남 단대동 끼니 굶는 소년 가장을 하면서 경제부총리, 기획재정부 장관을 했고 아주대 총장까지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광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제까지 해왔던 그 어떤 영광스러운 자리보다 우리 경기도민의 선택을 받고 싶습니다.”
김 당선인은 제8대 전국동시지방선거 마지막 주말 집중 유세가 한창이던 지난달 28일 저녁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 신청사 인근에서 이같이 호소한 바 있다. 연설 속에서 드러나듯 그가 걸어왔던 길은 결국 경기도민의 마음을 이끈 힘이 됐다.
1957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난 김 당선인은 열한 살 때, 서른셋 나이의 아버지를 여의었다. 이후 가세가 크게 기울면서 할머니와 어머니, 동생 셋과 함께 서울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과 천막촌 생활을 전전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당시 여섯 식구의 가장이었던 서른두 살의 어머니가 채석장에서 돌을 나르고 좌판에서 나물 행상을 하며 살림을 책임지는 모습을 봐온 김 당선인은 덕수상고를 졸업하기도 전에 일찌감치 은행에 취직해 가족을 부양하는 소년 가장 역할을 자처했다.
은행원으로서 가족을 부양하면서도 김 당선인은 야간 대학이었던 국제대학에 진학했다. 더 큰 꿈을 위해 ‘낮에는 은행원, 밤에는 대학생, 새벽에는 고시생’ 생활을 이어하며 각고의 노력 끝에 25살이 되던 해에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동시합격 해 공직에 입문한다.
고학력자 등 인재가 모인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에서 일할 당시 선배들의 편견과 무시 속에 홀대받던 그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에 이어 국비 장학금과 미국의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시간 대학에서 정책학 석·박사 학위를 단숨에 따내기도 했다.
만 34년간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은 ‘사회 변화에 대한 기여’를 신조삼아 소신껏 일하며, 여섯 명의 대통령과 함께 나라 살림을 책임져온 ‘행정 베테랑’으로도 불린다. ‘일 잘하는 김동연’의 대목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김 당선인은 노무현 정부에서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으로서 대한민국 최초 장기 발전전략인 ‘비전 2030’을 수립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경제금융비서관, 기재부 예산실장, 차관 등을 역임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국무조정실장,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경제 부총리를 하며 ‘혁신 성장’을 외쳤다.
공직 사회 내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배’로도 불리던 그는 큰 아들이 세상을 떠난 날에도 아들이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공직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기 위해 이 악물고 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직의 정점을 찍었을 때는 돌연 사의를 표하고 전관예우도 모두 거절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2년 넘게 전국을 누비며 농민, 어민, 자영업자, 청년 등을 만난 김 당선인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회의 나라’를 만드는 실천을 해보고자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을 설립하고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다.
2015년부턴 아주대 총장을 맡아 ‘파란학기제’ ‘After You’ 등으로 청년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고자 노력했다. 그가 선거운동 기간 동안 만난 대부분의 아주대 졸업생들은 김 당선인을 보고 “총장님”이라며 반가움과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던 김 당선인은 지난해 돌연 새로운물결을 창당하고 대선 출마에 나서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정치개혁’과 ‘기득권 깨기’를 줄곧 외친 그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정치교체’ 뜻을 함께 하겠다며 대선 후보직을 사퇴했다.
◇ 삶의 궤적과 맞닿은 공약…“경기도, 고른 기회 생기는 곳으로 바꾸고 싶어”
대선 이후 민주당과 합당 끝에 지난 4월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된 그는 “경기도를 대한민국의 새 중심으로 만들겠다”며 출마 선언했다. 선거운동 13일간 31개 시·군 곳곳을 누비며 부동산·교통·균형발전 등 공약을 통해 경기도에 고른 기회가 주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당선인이 내세운 공약들은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도 맞닿아있다. ‘혁신’과 ‘기득권 깨기’ 등을 강조한 그는 도내 청년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아주대 총장 시절 성공적 경험이 됐던 프로그램들을 벤치마킹해 ‘경기청년학교’ ‘경기청년사다리’ ‘경기청년은행’ 등을 제시했다.
또한 어린시절 집 없는 서러움을 경험했던 그는 ‘1기 신도시 리모델링·재건축 공약’에 특별한 애정을 쏟았다. ‘집 없는 청년·신혼부부에게 안정된 주거여건 제공’과 ‘GTX 플러스로 하루 1시간씩 도민들에게 돌려주기’ 등을 제시하며 ‘경기 찬스’를 드리겠다고도 외쳤다.
남·북부 균형발전을 위해선 ‘경기북부 특별자치도 설치’를 약속했고 북부가 경제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지사가 가진 모든 힘을 쏟겠다고 공언했다. 단기적으로는 교통과 기반 시설에 집중 투자하고 중장기적으로 문화콘텐츠 등 권역별 특성에 맞는 특구 설치 계획도 전했다.
아울러 이재명 전 지사의 경기도 정책을 계승·발전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대표적인 것이 ‘기본소득 시리즈’다. 김 당선인은 현재 청년과 농민이 대상인 기본소득을 문화예술인에게도 제공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를 K-컬처의 글로벌 거점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 경기도에서 ‘정치개혁’ 꿈 이룰 수 있을까
김 당선인은 선거를 일주일여 앞뒀던 지난달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기득권이 된 민주당에 대해 국민들께 용서를 구하고 낮은 곳으로 들어가 당의 변화를 만들어낼 씨앗이 되겠다”며 정치개혁 의지를 천명했다.
그는 “국민들을 만나 뵈면서 우리 민주당을 향한 큰 실망감에 고개를 숙이게 됐다”며 “우리 민주당에 큰 변화와 뼈를 깎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다만 종자가 될 곡식은 남겨놓는다는 말처럼 꾸짖을지언정 외면하거나 포기하진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정치개혁을 갈망하며 합당까지 했지만 대선 이후 민주당내에서 ‘586 용퇴론’ ‘성 비위’ 등 당 쇄신 문제를 두고 내홍이 이어졌고 선거운동 기간에도 상대 측인 김은혜 국민의힘 후보와 네거티브 전을 펼치며 기성 정치를 답습하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자성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지방선거 전날인 지난달 31일에도 김 당선인은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 일관되게 외친 ‘정치교체’ 의지가 더욱 강해진다”며 “저 김동연이 선두에 서겠다. 경기도에서부터 치유와 화합,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 ‘경기도형 정치 모델’을 만들어 내겠다”고 강조했다.
불공정과 기득권이 가득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꿔보고자 정치에 입문했다는 김 당선인이 앞으로 남은 임기 4년간 경기도에서 정치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지 도민들은 그의 진정성에 기대감을 건다.
[ 경기신문 = 김혜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