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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사에서 소외됐던 채색화를 재조명하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생의 찬미’, 9월 25일까지
성파 대종사, 강요배, 박대성, 등 작가 60여 명 참여
이건희 수집 ‘원형상(源型象) 89117-흙에서’ 최초 공개
‘디지털트윈 미술관’에서 온라인으로 전시 관람 가능

 

“우리는 오방색을 비롯한 원색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이렇게 중요한 부분이 미술사적으로, 미술관에서 크게 다루지 않는 것에 대해 아쉽다.”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의 말이다. 지난 1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막한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는 그동안 한국 미술사에서 소외됐던 채색화를 조명한다.

 

전시 개막에 앞서 열린 언론간담회에서 윤 관장은 “왕실의 여러 초상화와 기록화, 사찰과 단청 등 채색의 전통은 꾸준히 지켜져 왔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대학에서 쓰이는 한국 회화사 교과서 등을 보면 채색화 부분이 아주 서약하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이번 전시는 사명감 아래 이뤄진 결실이다. 한국 회화사에 중요한 부분인 채색화를 재조명하고자하는 뜻이 잘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전시 소감을 덧붙였다.

 

 

민화, 궁중회화, 종교화, 기록화 등을 아우르는 한국의 채색화는 우리의 삶과 함께하며 나쁜 기운을 쫓고, 복을 부르고, 교훈을 전하고, 역사를 기록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그만큼 전통회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후 문인들의 수묵 감상화가 주류를 이뤘고, 근대 이후 장식과 기복의 역할을 지닌 회화를 순수예술로 보지 않았던 예술개념의 형성으로 채색화는 오랫동안 한국 미술사에서 소외됐다.

 

‘생의 찬미’는 국립현대미술관 최초로 채색화를 다루며, 기울어진 한국미술사의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 전시는 특히 채색화의 ‘역할’에 방점을 뒀다.

 

전시를 기획한 왕신연 학예연구사는 “전시는 미술사적 흐름, 재료보다는 그 역할에 주목했다. 새해 첫날, 돌잔치, 결혼식, 장례식과 같은 중요한 순간에 어떤 이미지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그 상황을 함께 완성해 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자, 이 시대의 채색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전시의 제목 ‘생의 찬미’는 한국 최초의 여성 성악가 윤심덕이 1926년 발표한 곡 ‘사의 찬미’에서 따왔다. ‘사(死)’를 반의어인 ‘생(生)’으로 바꿔 삶을 축복하는 채색화의 역할을 담았다.

 

전시는 19~20세기 초에 제작된 민화와 궁중장식화, 20세기 후반 이후 제작된 창작민화와 공예, 디자인, 서예, 회화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 80여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제15대 조계종 중봉 성파 대종사를 비롯한 강요배, 박대성, 박생광, 신상호, 안상수, 오윤, 이종상, 한애규, 황창배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 60여 명이 참여했다.

 

송규태, 오순경, 문선영, 이영실 등 현대 창작민화 작가 10여 명도 참여했으며, 그중 3인 작가의 커미션 신작을 포함한 13점을 최초로 공개한다.

 

 

전시는 ‘벽사(辟邪)’, ‘길상(吉祥)’, ‘교훈’, ‘감상’ 등 4개 주제로 구성됐다.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 관람객은 ‘어느 오래된 멋진 한옥을 방문한다’는 상상을 떠올리면 좋다.

 

왕신연 학예사는 “관람객은 나쁜 기운들은 통과할 수 없다며 겁을 주는 벽사 이미지들을 만난다. 대문을 통과해 멋진 정원과 팔작지붕을 얹은 오래된 한옥의 서가를 경험한다. 집을 나서며 또 다시 들어선 정원에서, 담 너머 펼쳐진 웅장한 산세를 바라본다는 상상을 간직하고 전시를 관람한다면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작품들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마중’을 비롯해 ‘문 앞에서: 벽사’, ‘정원에서: 십장생과 화조화’, ‘오방색’, ‘서가에서: 문자도와 책가도, 기록화’, ‘담 너머, 저 산: 산수화’ 등 6개 공간으로 나눠졌다.

 

 

스톤 존스턴 감독의 처용을 주제로 한 영상 ‘승화’가 관람객을 마중한다. 국립무용단, 국립현대미술관의 협업으로 제작된 영상에는 사방위를 상징하는 4명의 처용이 등장한다. 이 공간의 가운데에 서 있는 관람객은 5번째 처용이 돼 벽사에 동참한다. 12분간 지속된 영상을 보고나면 나쁜 기운이 사라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대문을 지나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지닌 위풍당당한 호랑이를 만날 수 있다. 성파 대종사의 작품 ‘수기맹호도(睡起猛虎圖)’이다. 작품은 ‘대호도’를 재해석해 옻칠로 제작한 것으로,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힘차게 전진하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겼다.

 

 

‘오방색’ 공간에서는 색동저고리, 곤룡포, 함 등에 스며들어 있는 전통적인 색 오방색을 소재로 한 작품이 전시됐다. 높은 층고의 열린 공안에 설치된 이정교의 ‘사·방·호’는 작품을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 흰 화선지에 그려진 듯한 네 마리의 호랑이들은 반전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오방색의 픽셀과 여러 종류의 호랑이 이미지에서 가져온 도상들로 채워진 호랑이. 픽셀 사이 매서운 눈빛을 한 호랑이의 눈은 홍수처럼 밀려 온 서구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잃지 않은 한국적 문화를 상징한다.

 

 

전시에 마지막에 다다르면, 지난해 이건희 컬렉션 기증을 통해 수집된 후 최초 공개되는 ‘원형상(源型象) 89117-흙에서’를 볼 수 있다. 기증받은 이건희 수집품 중 가장 규모가 큰 작품으로, 총 407점의 패널로 구성돼 가로 1230cm, 세로 370cm에 이른다. 가운데 구심점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의 방위가 펼쳐지고, 산세 사이 물이 흐르는 형상이다. 전통적인 배산임수 명당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한편,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최초로 온라인상에 현실과 동일한 전시 공간인 ‘디지털트윈 미술관’을 구축했다. 관람객들은 PC와 스마트폰을 이용해 시공간 제약 없이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전시는 9월 2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진행된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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