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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예술세계는 비디오에 국한되지 않았다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바로크 백남준’
‘시스틴 성당’, ‘바로크 레이저’ 등 대형 미디어 설치 작품 선봬
백남준 90번째 생일 맞춰 지난 20일 개막… 내년 1월 24일까지
7월 29일 요나스 메카스-백남준 우정을 다룬 학술제 개최

 

나는 48개의 프로젝션이나 500대의 텔레비전으로 된 대형 작품을 작은 방에 만들었다. 이것은 디스코장이 될 뿐 아니라, 당신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흡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적 실험도 된다.” (백남준, 1993)

 

쉴 새 없이 바뀌는 영상과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듯한 소리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처음 전시된 ‘시스틴 성당’은 천장이 높은 독일관 가운데에 비계(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를 쌓아올리고, 프로젝터를 매달아 영상이 벽으로 투사되도록 했다.

 

이 구조는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성당의 벽화를 20m 높이의 비계 위에서 그렸다는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비계 위에서 고통스럽게 벽화를 그렸던 화가의 역할은 이미지를 순간적으로 투사하는 수많은 기계들로 대체됐다.

 

‘시스틴 성당’은 물고기 떼와 성조기, 요셉 보이스 등 다양한 영상이 무작위로 재생되는 느낌을 준다. 실제로 백남준은 다양한 비디오로 구성된 4채널 영상의 위치를 계속 바꾸었다.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관장 김성은)는 지난 20일 백남준의 90번째 생일에 맞춰 특별전 ‘바로크 백남준’을 개막했다. 내년 1월 24일까지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비디오와 빛으로 가득 찬 백남준의 (옛)설치작품들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서 기획됐다. 그동안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대규모 미디어 설치 작업물과 레이저 작업물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에서는 백남준이 아날로그 비디오를 물질적 공간에 직접 투사해 만들었던 시공간적 경험을 ‘아날로그 몰입’이라고 칭한다. 오늘날 초고해상도 디지털 영상으로 구현된 대형 외벽 영상이나 디지털 프로젝션 투사 기법(매핑)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몰입과는 다른 종류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해 대규모 미디어 작품 ‘시스틴 성당’을 설치했고, 1995년에는 독일의 한 교회 전체에 대규모 프로젝션과 레이저를 활용한 작품 ‘바로크 레이저’를 선보였다.

 

 

백남준이 만들었던 아날로그 몰입은 특정한 공간 안에서 훨씬 더 강력해진다. ‘시스틴 성당’은 마치 디스코장에 입장한 듯한 아찔한 소음 속에서, ‘바로크 레이저’는 우리를 이끄는 레이저 빛을 따라 바로크식 커다란 돔 아래에서 관람해야 한다.

 

관객이 작품 안에 들어서면, 비디오 투사와 건축공간의 임의적 조합이 만들어져, 그 순간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든다. 수치화할 수 없는 다양한 정보의 조합이기에 완벽하게 복제하거나 반복할 수 없는 퍼포먼스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

 

이는 건축, 회화, 조각, 음악, 춤 등 모든 예술매체의 이상적인 상호작용을 추구했던 바로크식 종합예술과 닮아 있다.

 

전시를 기획한 이수영 학예연구사는 “백남준을 바라보는 방식을 넓혀서 관객들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 중심에는 백남준의 끝없는 예술적·기술적 비전을 상징하는 레이저가 있다. 또한 대형 미디어 설치 작업들을 생생하게 전달해, 백남준이 굉장히 다양한 예술을 추구했음을 알려드리고 싶다”고 설명했다.

 

 

백남준의 빛은 촛불에서 시작해 텔레비전과 비디오, 그리고 마침내 레이저에 다다른다. 백남준에게 레이저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정보와 빛의 전달 매체이며, 기술과 예술의 끝없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백남준이 1998년 프랑크푸르트 현대 미술관에서 처음 선보인 ‘촛불 하나’는 초를 촬영하고, 5대의 프로젝터를 통해 색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실시간 비디오 설치 작품이다. 당시 이 작품은 무게가 80㎏에 달하는 삼관식 프로젝터의 구조를 변형해 구현됐다.

 

 

이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춰 버린 삼관식 프로젝터는 영상신호를 적색, 녹색, 청색 세 개의 브라운관에서 증폭한 후, 투사 렌즈를 통해 화면에 맺히게 하는 빔 프로젝터를 말한다. 백남준은 프로젝터를 조작해 각각의 브라운관에서 투사되는 이미지가 완전히 합쳐지지 못하게 했다. 영상은 알지비(RGB)가 분리된 상태로 투사돼 노란색, 청록색, 보라색 등 빛의 층을 만들어낸다.

 

오래된 삼관식 프로젝터는 영상의 검은색을 표현하는데 탁월하지만 해상도가 낮다. 그러나 낮은 해상도가 오히려 영상의 미세한 부분을 부드럽게 나타내 백남준의 아날로그 영상을 더욱 풍부하게 보여준다.

 

절대 고장나지 않는 텔레비전, 정전 중에도 볼 수 있는 텔레비전인 ‘촛불 TV’는 오래된 텔레비전의 내부를 비우고 대신 그 안에 초를 하나 밝혀 놓은 작품이다. 텔레비전의 전기적 빛을, 물질을 태워서 빛을 만드는 촛불로 대체했다.

 

텔레비전의 전원을 켜는 대신 촛불이 다 타면 사람이 새 것으로 교체해 다시 불을 밝혀줘야 한다. 이는 끊임없이 발전하는 새로운 기술이 오래된 촛불에 의해 대체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줌과 동시에 인간이 중심이 돼야 하는 기술의 본질을 밝힌다.

 

 

레이저, 비디오와 텔레비전, 브라운관과 자석, 촛불과 달…. 백남준은 이런 기술들을 한데 섞어 흐르는 시간에 훼방을 놓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미래와 수많은 종류의 과거, 찰나의 현재를 경험한다.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예술가의 기념일을 축하하는 것이 모두가 함께 나누고 즐길 수 있는 축제처럼 될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역사적 인물로서의 백남준보다는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새로운 의미와 기쁨을 선사하는 작가로서, 비디오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매체로 한계 없이 예술을 펼쳤던 백남준 작가를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한편,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 탄생 90주년 연계 행사로 오는 29일 학술제 ‘백남준의 선물’을 연다. 요나스 메카스 탄생 100주년이자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맞아, 1960년대 후반 뉴욕에서 플럭서스 활동을 매개로 만난 두 아방가르드 아티스트, 예술적 동지였던 백남준과 메카스의 우정을 이야기한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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