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신문은 추석을 앞두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국으로 피난온 '우크라 고려인들'을 만났다. 피난길의 긴박했던 상황과 망향의 설움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전쟁으로 가족들과 헤어져 머나먼 ‘한국’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고려인 김잔나(39) 씨와 박마리나(37) 씨는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의 포화를 피하기 위해 폴란드 바르샤바를 거쳐 한국으로 입국했다.
두 명이 살던 돈바스 지역은 8년 전인 2014년 내전 이후 간신히 평화를 누리는가 했지만, 러시아의 침공으로 다시 전쟁의 공포를 겪어야 했다.
잔나 씨는 남편이 민간 지원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징집되자 아들과 딸을 데리고 폴란드로 피난했다. 사방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고 어딘가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에 건물들이 붕괴되는 것을 보고 큰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떠올렸다.
마리나 씨는 전쟁 초기에 남편·딸과 함께 부모가 사는 우크라이나 중부지역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마리나 씨 부모가 손수 일궈놓은 텃밭에 미사일이 떨어졌고 이웃들은 폭격에 목숨을 잃었다.
두 사람은 “피난길 내내 폭격과 화염에 시달렸고,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럼에도 어떻게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폴란드 바르샤바 대사관의 도움을 통해 한국으로 피난왔다. 갑작스런 전쟁으로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부모와 친척을 통해 간신히 몇 번 ‘나의 조국’이라고 들어봤던 한국이 처음에는 낯설었다.
두 사람은 “하루 속히 전쟁이 끝나 그리운 가족·이웃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한국의 추석과 같이 하루빨리 고향땅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정교회 축제를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는 고려인 1만 3500여 명이 살고 있고, 국내에는 지난 4월 기준,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2597명이 거주하고 있다.
[ 경기신문 = 임석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