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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향연, 풀피리 외길 30년

혼이 깃든 풀피리, 역사 속에 세계화
‘풀잎 하나로 자연을 연주’하는 인간문화재 오세철
자연에 파묻혀, 자연을 짓는 농삿꾼 오세철

과거 70~80년대만 해도 버들나무가지를 잘라 속에 있는 나뭇가지를 빼내고 걷 껍데기에 구멍을 뚫어 소리를 냈던 풀피리.
21세기를 맞아 최첨단화된 IT강국 속에서 컴퓨터세대들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이제는 386세대마저 먼발치에서 그려내는 고향의 향수일 뿐이다.
자연과는 동떨어진 삭막한 도심의 아이들이 막끽할 수 없었던 그리움의 소리, 평생을 나뭇잎과 풀잎에 묻혀 살았던 풀피리쟁이 오세철을 만나보자.
43번 국도 포천시내를 지나 철원과 포천 경계의 작은 마을 자일리.
굽이굽이 휘어진 논두렁길. 여러채의 집을 지나 끝자락에 대문도 없는, 허름한 농기구 창고와 푸른빛 지붕을 얹어 언뜻 30년은 된 듯한 양옥집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편함에는 흑색 매직으로 꾹꾹 눌러 ‘오세철’이란 이름 석 자가 쓰여 있으니 그곳이 바로 무형문화재 풀피리 예능보유자 오세철씨의 자택이다.
기자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내 2명밖에 없다는 풀피리 인간문화재가 기거한다는 자택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데다 텃밭에 배추와 무우를 재배해 그의 손가락은 트고 갈라져 있었다.
영락없는 농삿꾼의 모습이었다. 왜 꼭 이렇게 외진 농촌에서 살길 고집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농촌에서 태어났고 농사를 지어 왔는데 특이한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평생업을 포기할 수 있느냐며 되레 반문하는 그다.
그는 또 풀피리를 연주가 도심에서 얻을 수 없는, 오직 이 드넓은 자연만이 나에게 준 선물이기에 내가 이 자연에 파묻혀, 자연을 짓는 농삿꾼이란 것을 단 한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57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중학교 1학년시절에 풀피리를 불기 시작해 30년간 그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지켜온 오세철(47)씨는 2002년 11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8호 풀피리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이후 한국방송 민요백일장에서 입상한 뒤 국립 국악 관현악협연 ‘피리를 위한 무대’, 국립민속박물관 통소리협회 창립기념공연, 아시아전통문화국제학술회의 및 아시아민속문화엑스포 등에서 협연했다.
2003년에도 오세철의 음악세계 제2회 풀피리 및 배뱅이굿 발표회를 갖고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풀피리 협연을 이어갔고 권위있는 각종 국악관련 방송에 출연하면서 문화·예술상 등을 휩쓸었다.
이 와중에도 그의 쉼없는 연구와 학술은 지난 3월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배뱅이굿을 이수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단순한 농촌 청년에서 내로라하는 국악인, 예술인이 되기까지 그의 인생 외길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중학교 시절. 풀잎 한 조각으로 청부타령을 연주한 풀피리 명인 전금산(田今山)선생의 곡조가 50리에 울려 퍼지게 되고 이에 흠뻑 매료된 오씨는 학교를 뒤로한 채 그의 수제자가 되길 결심한다.
그러나 전형적인 농촌가정에서 자란 오씨는 보수적인 계도를 걸어온 부모님을 둔 덕에 풀피리 연습을 할 때마다 회초리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럴수록 그의 열정은 더욱 뜨거워져만 갔고 그만의 풀피리 연구는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급기야 1세기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한다는 소리계의 명창 이은관(俔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예능보유자)선생을 찾아 엄격한 지도하에 소리를 배우게 된다.
풀피리를 연구하고 더불어 통달한 그에게 어떤 잎이 가장 연주하기 좋으냐는 질문에 오씨는 “나뭇잎이든 풀잎이든 꽃잎이든 톱니모양이 아닌 매끈하고 약간은 넓적한 것이면 모두 연주가 가능하다”며 “그중에서도 가장 연주하고 좋은 잎은 ‘복숭아 잎’이다”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아타까운 점이 있다면 자연과 산림이 파괴돼 그로 인해 도심지로 갈수록 ‘녹색식물’부족현상이다.
도심에는 자연상태로 잘 자란 나뭇잎이나 풀잎을 찾아 볼 수 없어 애먹었다는 그의 에피소드에는 무언가 감출 수 없는 안타까움마저 베어 있었다.
오씨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풀피리 연주가 국내 국악계의 관심 속에 날로 알려지고는 있으나 이를 디딤돌 삼아 세계에 아름다운 한국의 풀피리 연주를 전하길 소망하고 있다.
조선왕조 500년 이상 그 맥을 이어온 풀피리 역사가 전 세계에 알려져 ‘자연의 아름다움을 소리’하면 대한민국을 떠올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달에 수십여차례의 공연섭외와 월평균 20회의 빡빡한 공연일정 속에 끝없는 스포트라이트와 갈채를 받고 있지만 정작 해외공연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은 오씨의 큰 근심거리다.
이렇다 보니 오씨는 재능있는 제자를 육성하는 게 급선무다.
풀피리는 다른 악기와는 달리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연습과 실력을 통한 인재보다 음악적 재능과 소리의 습득 능력이 뛰어난 제자를 발굴하고 있다.
현재 오씨는 그의 딸 오연경(15·영북중)씨를 전수자로 혹독한 연습을 강행시키고 있으며 영북초교교사 1명 등 16명의 수제자를 두고 매주 2회에 걸쳐 가르치고 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1시간 가량 소요되는 배뱅이굿을 완창하고 40분 동안 논두렁을 거닐며 풀피리 연습을 마치고 난 뒤에야 조식을 할 만큼 그의 교육에 대한 열의는 대단하다.
"풀피리 연주를 특기로만 생각하지 역사의 한 흐름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는 오씨는 "재능있는 제자를 배출하는 게 급선무이고 기회가 된다면 해외공연을 통해 우리의 소리를 널리 알리는게 소망"이라고 말한다.
오세철! 그만의 음악세계가 세계화 될 그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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