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별 과제가 어려운 이유는 여럿이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다. 각자 다른 의견을 맞춰가는 과정에서는 부딪치기 마련인데 성격과 전공 분야가 모두 다르면 그럴 확률은 더 커진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예외는 있는 법. 젊은 예술인 강헌구·손채원·이진규·최준영 씨는 똘똘 뭉쳐 인천을 떠도는 ‘들리는 소문’을 찾아가는 중이다.
‘2022 도화가압장’은 인천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예술인 협업 지원사업이다.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은 팀을 꾸려 주제에 맞는 결과물을 자유롭게 만들어낸다. 올해의 주제는 장소에 얽힌 ‘들리는 소문’이다.
서로 다른 이들이 만나게 된 건 각자의 선택 덕분이었다. 같이 팀을 꾸리고 싶은 참여자들을 2명씩 골랐다. 그 결과 싱어송라이터인 조장 헌구 씨, 무용가 채원 씨, 마술사 진규 씨, 연기 전공 준영 씨가 한 팀이 됐다.
이번 작품에서 헌구 씨는 음향·음악 감독과 소리 채집을 맡아 소리를 기록한다. 채원 씨는 춤으로 장소가 가진 분위기를 표현하며 진규 씨는 서커스로 눈을 사로잡는다. 준영 씨는 연기로 기본적인 서사 틀을 보여 준다.
이들은 각자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고 이후 이야기들은 공연 당일 현장에서 선보인다.
자료조사와 탐방 끝에 이들이 고른 장소는 미추홀구 도원역 오광로 일대다.
이곳은 전도관이 있었던 곳이다. 전도관은 1957년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가 1957년 세운 예배당으로 근처에 많은 신도가 살았다.
준영 씨는 “전도관은 당시 중요한 랜드마크였다고 들었는데 한 세대를 보여줄 수 있는 특정한 장소가 재개발로 인해 아무렇지 않게 허물어진다는 게 놀라웠다”며 “전도관의 모습을 작품에 담아 예술적 영감을 보여 주는 것뿐만 아니라 기록으로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의 제목은 따로 없지만 노마디즘(nomadism)이 어울릴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헌구 씨는 “노마디즘은 이민·유목하는 삶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며 “작품의 배경이 재개발로 인해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곳이다. 떠나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과 그곳에 여전히 남아 있는 느낌들을 작품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웃지 못할 사연도 많았다. 촬영 장소가 오래된 공간인 탓에 모기도 많았고 연습 도중에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괴담 소개 프로그램에 나올 만한 신기한 경험도 있었다.
진규 씨는 “연습 도중에 허리를 다쳤다. 너무 아프니까 표현하려고 했던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나왔다”며 “NG 없이 마쳤지만 다치지 않았다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채원 씨는 “밤의 전도관 모습을 보기 위해 오후 10시쯤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날따라 팀원 몇몇이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라. 불교 집안이라 옛날부터 보고 자란 게 많아 막걸리와 소금을 먹고 잤는데 괜찮아졌다”며 “평소에 술을 잘 안 먹는 준영 씨도 그날따라 막걸리를 먹었다고 해서 놀랐다”고 이야기했다.
협업 규칙도 만들었다. 큰 갈등 없이 의견을 맞춰나갈 수 있었던 데는 이 규칙이 한몫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규칙은 ‘맺음말은 긍정적으로 한다’였다.
준영 씨는 “단톡방에서 텍스트로 말하다 보면 실제 말하는 것에 비해 감정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친절하게 말하자는 뜻에서 만들어진 규칙이다”며 “‘알겠습니다’ 보다는 ‘알겠습니당’,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신 ‘이건 어렵지만 대신 이게 됩니다’ 등 긍정적으로 말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지켜지지 않은 규칙도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단톡방 사용’이었다. 하지만 팀원 모두 불만은 없었다.
준비 과정은 급하게 정해야 일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열정이 넘치는 팀원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시간이었다.
지난 7월 25일 첫 팀 일정을 시작한 후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달린 이들은 결과 발표를 약 2주 정도 앞두고 있다. 최근 막바지 연습 탓에 오후 9시 이후 회의가 있을 만큼 바쁘지만 얼굴은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협업의 결과물이 ‘새로운 가치 제시와 협업의 기록’으로 소문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헌구 씨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지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 보전되는 가치들이 달랐으면 좋겠다”며 “이번 작품이 여러 예술가들이 그 현장들을 활용하면서 작업한 기록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규 씨는 “작업물에 우리 팀만의 메시지가 담겼는데 그 의미가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며 고 이야기했다.
젊은 지역 예술인들이 모여 그들의 생각을 교류하고 확장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큰 의미를 지닌다. 경계를 넘어선 만남은 지역 문화예술의 확대로 이어진다.
채원 씨는 “이번 사업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다양한 예술인을 만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해서다”라며 “협업이라는 포맷이 더 확대되고 예술인들이 모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는 30일 오후 7시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에서 젊은 예술인들이 준비한 인천의 새로운 가치를 만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관객석은 50석으로 제한하며 참여를 원하는 관객은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https://ifac.or.kr/)에서 신청하면 된다.
[ 경기신문 / 인천 = 김샛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