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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배의 공동선(共同善)] 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와 된장콩잎

 

 

한국 최고의 프로야구 선수 이대호가 지난 8일 은퇴했다. 매 시즌 타율 3할, 20홈런, 100타점 달성의 목표를 세운 그는 3할3푼1리와 23홈런, 101타점을 기록하며 야구 인생의 마지막 해인 올해를 장식했다. 타격 7관왕으로 롯데 자이언츠의 두 번째 영구 결번의 주인공이 된 그의 은퇴는 남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그가 불우한 어린 시절에 닥친 갖은 역경에도 이를 극복하고 최고의 선수로 성장해 명예롭게 은퇴했기 때문이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 할머니 손에서 컸다. 인터뷰에서 그는 “야구용품을 살 돈이 없어 할머니 쌍가락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다시 찾아오기를 20번도 넘게 했다. 내가 잘 돼야 할머니의 희생에 보답할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고 회고했다. 할머니는 시장에 나가 된장을 바른 콩잎을 팔아 대호 형제의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출생이 자신의 선택의 결과가 아닌 것처럼 성장기에 겪은 어려움도 개인의 잘못과는 무관하게 사람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이런 변수들이 이대호를 빗나가게 하거나 좌절시키지는 못했다. 그는 어린 마음에도 반드시 훌륭한 야구 선수로 커서 할머니의 그 큰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다짐을 마음속에 새겼다. 고교 재학 중 세상을 떠난 할머니에 대한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자 대신 매년 프로야구 정규시즌을 마치면 독거노인들을 위해 연탄도 나르고 목욕 봉사도 하리라 마음 먹었던 것이다. 그가 해마다 꼬박꼬박 하는 봉사는 올해로 16년째다. 뒤늦었지만 할머니에 대한 진심어린 효도인 셈이다.

 

그는 프로야구가 창설되던 해에 태어나 20살에 정식 프로선수가 되어 창설 40돌이 되는 올해 40살의 나이로 은퇴했다. 한 시대가 막을 내린 셈이다. 이대호 선수가 대중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6년 타격 3관왕에 오르면서였다. 인생의 황금기를 열 수 있게 만든 힘은 역시 아내의 헌신과 내조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를 마음이 반듯한 프로야구선수로 키운 이가 할머니였다면 조선 최고의 4번 타자로 키운 이는 분명 아내 신혜정 씨이다.

 

40년 만에 나올까 말까 한 타자 이대호. 은퇴식에 선 그는 신동빈 롯데 그룹 회장을 향해 “후배 선수들이 팀을 떠나지 않게 해달라”며 적극적인 지원을 촉구하는 인상적인 고별사를 남겼다. 전석이 매진된 사직 구장을 메운 팬들을 향해서는 배트 대신 치킨과 맥주를 들고 관중석을 찾겠노라고 역시 롯데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당부하면서 감사 인사를 바쳤다.

 

그는 겸손하다. 그러면서도 늘 당당하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승엽 형은 못 따라간다. 추신수는 늘 자신보다 위였다”면서 선배와 동료를 추켜세운다. 도열해 있는 동료 후배선수 한사람 한 사람을 안아주면서 일일이 따스한 배려의 말을 남기고 실천한 이대호. 사람이 성장하는 데에는 주변 환경과 가정 형편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들 하지만 당사자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음과 의지가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사례도 있음을 이대호는 온몸으로 입증했다. 선수 맏형으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대는 성공한 삶을 살아 왔다! 더 큰 뜻을 이루기를 팬으로서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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