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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 온전한 견딤

 

 

 

 

 

파란 하늘이다. 물걸레로 닦아낸 칠판 같다. 티끌 하나 보이지 않아서,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려서지 못한다. 슬쩍 한 칸 내려서서,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을 향해 걸어가지 못한다. 파란 하늘이라서. 다 벗겨지고 속살만 남은 가을날이라서. 없어서. 보이지 않아서. 나는 감히 어쩌지 못하고 명랑한 하루 앞에 그림자로 선다. 처남이 죽었다. 정부가 발표한 코로나 사망자 숫자에 처남의 죽음이 합쳐진다. 화장터 소각로에는 한 시간 간격으로 새로운 주검이 눕는다. 주검이 바뀔 때마다 살아남은 자들이 운다. 울음의 사연은 소각로마다 다르지만, 울음이 향하는 방향은 시뻘건 불꽃 너머로 같다. 아무리 울어도 불꽃 너머는 꿈쩍없다.

 

할아버지가 운다. 처남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버스 안이다. ‘인수’일까 ‘연수’일까. 딸의 이름을 부르며 우는 할아버지의 슬픔이 버스를 삼킨다. 자식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길을 나선 늙은 아비의 울음 앞에 모두가 침묵한다. 눈시울을 훔치는 승객도 몇 있다. 견디기 힘든 슬픔과의 동행이다. 죽음 다음은 늘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남은 자들은 묻고 덮고 잊는 일을 견디며 산다. 살아내는 일처럼 오랜 견딤이 또 어디 있을까. 망각이란 것도 견딤을 위한 돌출행동일지 모른다. 음식을 씹어 삼키는 행동조차 견딤을 위한 준비동작일 수 있다. 견디기 위한 망각본능 비슷한 것. 보고 듣고 씻고 자는 것 역시 그런 것 아닐까.

 

파란 하늘이다. 막 눈을 뜬 새벽 같다. 어쩌면 그런 까닭으로 헤어지는지 모른다. 가을 말이다. 계절을 가려가며 작별하는 건 아니지만, 유독 가을날의 이별은 쓸쓸하다. 나뭇가지를 버리고 추락하는 낙엽 때문일까. 아니면 둥지를 버리고 떠나는 철새 때문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바다를 버리고 강을 거슬러 오르다 죽는 연어 때문일까. 버림이든 떠남이든 죽음이든 가을과 만나면 파랗게 멍이 든다. 멍든 속살을 다독이며 견디는 건 버림과 떠남과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은 생명의 몫이니. 가을은 견딤의 계절일 수밖에. 그렇다고 무작정 견딤을 강요하진 말자. 산에 떨어진 빗방울이 계곡물을 만나지 않고 강에 도달할 순 없으니까.

 

온전한 견딤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림과 만나야 할 시간. 만나지도 않고 헤어질 순 없지 않는가. 헤어짐이 두려워서 만남을 외면하진 말자. 버림보다 고달픈 건 고립이고 떠남보다 야속한 건 고독이다. 오지도 않은 내일이 두려워 뜬눈으로 밤을 새는 바보짓은 하지 말자. 오고야 말 것은 마침내 오고야 마는 것이니. 가을 다음은 겨울이고 겨울 다음은 기필코 봄이다. 기꺼운 봄이라고 겨울을 건너뛸 순 없다. 기꺼운 것이 가슴에 살아 꿈틀거린다면, 꿈틀거리는 그것을 붙들고 이 계절을 견뎌내자. 참고 버티며 살아내자. 문학이나 예술이라는 것도 결국은 참고 버티는 일인데, 사랑이라거나 헌신이라는 것들은 오죽하겠는가.

 

파란 하늘이다. 당신이 딛고 선 가을 또한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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