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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대의 미디어산책] 봉건정치, 보스정치, 팬덤정치

 

제헌의회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은 국부로 추앙받았다. 봉건시대 왕 같은 대통령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조선왕조가 해체됐지만 근대화 이행이 더디어 봉건가치가 사회 면면에 남아있었기에 국민이 대통령을 인식하는 시각은 숭상이었다. 5.16을 통해 집권한 박정희도 비슷했다. 모내기하고 논두렁에서 막걸리 같이 마시는 사진 한 장에 국민들이 칭송했다. 박정희는 시대정신을 잘 읽었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농축되어 있듯이 그시대 국민이 바란 방향을 잘 포착하여 경제개발5개년계획 등으로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 경제발전은 큰 치적이다. 권력욕으로 72년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유신헌법을 발표하며 정치가 사라졌다. 해방 이후 79년까지는 정치보다 통치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대권을 노릴 수 없는 이시절 국회의원 선거만이 정치영역이었다. 국민의식과 사회제도가 근대화 이행과정이었기에 이 시대의 정치는 봉건적이다. 

 

야당이 유신시대 권위주의 통치하에서 명맥을 이어나가려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고 지역 연고가 있는 YS, DJ가 국회의원 공천권을 무기로 강력한 보스정치를 꾸려나갔다. 70-90년대 야당의 보스정치는 지역 맹주 정치였다. 당시 DJ, YS는 그 이름 자체가 브랜드고 정책이자 정치적 결사체였다. 필요할 때마다 당 이름을 바꾸고 조직개편을 했지만 본질은 언제나 YS당, DJ당이었다. 여야 모두 정치상황이 당내 민주주의를 반영할만한 여유는 없었고 결과적으로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정치구조가 오랫동안 형성됐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와 함께 3김시대가 도래하며 보스정치가 만개했다. YS의 민자당 합류도 별 논의 없이 보스의 판단하에 당이 그냥 좇아간 경우다. 가히 보스정치의 위력이다.

 

2002년 노무현은 불리한 상황을 뚫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가 살아온 삶이, 가치가, 철학이 좋아서 같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노사모란 이름으로 모였다. 정치인 팬덤의 최초 사례다. 지역적 연고와 무관하게 젊은 고학력 회사원 중심으로 형성된 노사모는 인터넷을 통해 커다란 힘을 발휘했다. 문재인도 팬덤이 강력했다. 노사모를 이어받은 게 문파다. 박근혜는 보수 정치인 중에 유일하게 팬덤이 있었다. 박근혜는 대선후보 시절부터 아버지의 후광과 지역기반에 의해 결집된 지지세력이 오히려 탄핵 이후 태극기부대가 되어 박근혜 팬덤으로 강력한 성원을 보냈다. 문재인은 친구에게 박근혜는 아버지에게 받아온 팬덤인데 비해 이재명은 스스로의 포지셔닝에 의해 팬덤을 만들었다. 끊임없는 모바일 메시지를 통해 이재명을 지지하는 젊은 지지세력을 끌어냈고 대선 패배 후 당대표 도전 시 “개딸”등의 팬덤이 역할을 했다. 

 

우리 정치사에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박근혜 정도가 팬덤을 갖고 있던 정치인이다. 팬덤을 형성할 수 있는 건 그 정치인의 매력이자 자산이다. 팬덤의 속성이란 게 강해질수록 경쟁상대에게 폭력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지만 해결은 팬덤을 이끄는 정치인의 도덕성이자 책무이다. 노무현은 팬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하에 한미 FTA를 맺었다. 

 

5년 후를 준비하는 정치인 중에 어떤 팬덤이 생길까? 대통령의 능력에 실망하다 보니 대선후보 탈락한 홍준표의 지지율이 오르는 기현상이 생기고 있다. 최근 흐름은 보스정치가 해체되고 팬덤 정치가 나타났는데 현재 여권은 검찰 보스정치로 회귀하고 있다. 팬덤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이 시대에 주어진 시대정신과 소명을 잘 받아들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잘 설계할 수 있다면 난 그 정치인의 찐 팬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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