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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누구나 자기 삶의 수레꾼

       

     

                                               

  옷깃 여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필이란 글 항아리 한 점 가슴속에서 구워낼 요량으로_. 한평생 문학이란 통증과 ‘잘 써야 할 과제’라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홀로 있는 공허한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훈련으로써 글 읽고 쓰는 것만이 나답게 살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의 삶을 돌이켜 보았다. 무엇을 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디에 시간을 썼는가? 그 안에서 ‘참다운 나’를 위한 것이 얼마나 있었던가. 250년 전 살다간 조선의 문인 이용휴(李用休)는 그의 글에 썼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은 작품에 담지 않으려 했고, 남다른 생각을 던짐으로써 독자가 당연시 해 온 통념에 균열을 일으키고자 했다.’ 라고.

   

  아홉 권 분량의 『고요한 돈강』을 쓰는데 저자로서의 솔로 호프는 15년을 바쳤다. 박경리 선생은 『토지』를 쓰는 데 이십오 년, 황석영 씨는 열 권의 『장길산』을 쓰는 데 십이 년이 걸렸다. 그런가 하면 조정래 씨는 열두 권짜리 『아리랑』을 쓰는데 사 년 팔 개월이 결렸다. 사 년에 끝내려 했는데, 팔 개월이 더 걸린 것은 『태백산맥』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우익단체가 검찰에 고발하는 바람에 실랑이 하느라고 늦어졌다고 했다.

 

  임중도원(任重道遠)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맡은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논어 태백(泰伯)에도 나오는 문구인데, 증자가 말하길 ‘선비는 가히 넓고 굳세지 못할지니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을 머니’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독립운동 하는 분들이 즐겨 쓰는 문자라고 읽어왔다. 문학을 하면서부터는 동양 문학에 빠져들었고, 작가라는 이름을 걸고 글을 써오면서는 ‘작가의 가는 길’ 또한 임중도원임을 깨닫고 나의 게으름을 탓할 때 푸념같이 입술에 얹어본 글귀다.

 

  2월의 캘린더(calendar)는 꽁지 빠진 새 같다, 28일이 끝이다. 나머지는 여백이다. 그 여백 속에는 대한독립 만세와 동학농민군으로서 죽창부대의 함성과 근세 촛불집회의 불빛이 일렁이는 것 같다. 2월은 짧다. 인생도 짧다. 한해가 시작되어 달려온 지도 한참 지났다. 새해 꿈꾸었던 계획이 실행단계를 지나 열을 받아 탄력적으로 달려가야 할 때이다.

 

  2월의 캘린더를 보고 있으면 어머님 말씀이 떠오른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는 것이다. 지레짐작으로 추측하지 말고 증명해 정확성을 확고히 하라는 것이다. 이런 정신이 내  글쓰기의 원초적 본능과 결합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생각이요. 우주로 가는 우리나라의 누리호를 만들어내는 과학자들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내 아버지는 가을걷이가 끝나면 벼 가마니를 수레에 가득 싣고 소달구지 몰아 공판장으로 갔다. 그곳 농산물검사소 직원이 매겨주는 등급에 따라 벼 값을 받고 귀가할 때는 빈 수레였다. 그때 나는 빈 수레의 아버지 곁으로 바짝 다가가 앉아 있을 때가 행복했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아버지에겐 그 수레가 운명의 멍에요. 숙명이었던 선한 농부요 고을의 봉사자이었다는 생각이다. 낙엽 지는 게 어찌 나무뿐이며, 수레를 몰던 아버지만 세월의 물결 따라 저 세상으로 갔겠는가. 나는 지금 아버지 대신 수레꾼 되어 에세이라는 멍에를 메고 글 수레를 끌면서 슬퍼할 틈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자기 삶의 고독한 수레꾼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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