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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 예술기행] 폴 베를렌느와 아르덴 쥐니빌

 

화가 이중섭이 좋아한 시인 폴 베를렌느. 그는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스케치하러 나가기 전 귀여운 당신이 그리워 설레는 마음으로 폴 베를렌의 시를 적어 보내오.”라고 썼다. 그 시는 아마도 다음 시가 아니었을까.

 

거리에 비 내리듯/마음엔 눈물이 흐른다.

이토록 마음 깊이 스며드는/이 서러움은 무엇일까?

견딜 수 없는 마음엔/아 아, 비의 노래여!

다정한 비의 속삭임을/땅 위에도 지붕 위에도(.......)​

 

베를렌느가 쓴 ‘거리에 비내리듯’이다. 허전한 마음을 유연하고 음악적인, 그리고 우수어린 운율로 노래하고 있다. 그의 애조 섞인 음조는 비운의 화가 이중섭의 감수성을 터치하기에 손색이 없다.

 

 

불멸의 시인 베를렌느. 1844년 봄, 프랑스 북동부 메츠에서에 태어났다. 그가 시를 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1학년 때. 하지만 판사가 되려고 법과대학에 들어갔다. 가세가 기울자 중퇴하고 보험회사에 취직했지만 전혀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몽마르트르의 문학서클과 고답파 시인들을 찾아다니며 시를 썼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외동아들이 시를 쓴답시고 파리의 보헤미안들과 어울리는 것을 심히 걱정했다. 결국 그녀는 베를렌느를 서둘러 결혼시켰다. 그렇다고 그가 시를 포기할리 만무했다.

 

베를렌느는 젊은 촉망 받는 시인으로 성장했다. 어느 날 천재시인 아르튀르 랭보를 만났다. 열 살 연하인 그에게 그만 매료당한 베를렌느. 곧 비운의 사랑에 빠져들어 랭보와 함께 런던, 브뤼셀로 2년 간 광란의 질주를 벌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둘은 큰 다툼을 벌였다. 질투와 절망에 빠진 베를렌느는 술에 취해 총을 발사했고 랭보의 왼쪽 손을 스쳤다. 곧 그는 체포됐고 동성애자라는 죄목까지 추가 돼 벨기에의 몽스(Mons) 감옥에 수감됐다.

 

형을 살고 나온 베를렌느는 시들을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명성을 얻었지만 허전함이 밀려온 걸까. 정처 없이 아르덴 지방으로 떠났다. 어머니가 소유하고 있는 아르덴의 쥐니빌(Juniville)의 농장에 머물며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베를렌느가 머물다 간 쥐니빌. 라 르투룬 천이 마을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어 매우 아름답다. 랭보의 고향 샤를르 메지에르와도 그리 멀지 않다. 또한 신성의 도시이자 왕의 도시인 랭스에서 35km로 떨어져 있다. 이처럼 주변부에 예술과 역사의 도시가 어우러져 문화유산이 풍부하다.

 

하지만 쥐니빌은 베를렌느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그로 인해 생긴 풍부한 문화자원이 남아있다. ‘시인의 순례길.’ 랭보-베를렌느 관광 산책로의 첫 노정이 여기서 시작돼 벨기에까지 무려 300km나 이어진다. 이 긴 여정은 진정한 시적 순례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순례길에 끝없이 펼쳐지는 경치들은 비범한 두 시인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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