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진출이 어려워진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유럽연합(EU)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어 국내 업체들과의 경쟁이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1~2년 수주경쟁으로 5~6년 시장점유율이 좌우되는 만큼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한국무역투자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글로벌 배터리의 최대 격전지, EU 배터리 시장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EU 시장 점유율이 2020년 16.8%에서 2022년 34.0% 상승했다고 14일 밝혔다. 같은 기간 국내 업체들의 점유율은 68.2%에서 63.5%로 하락했다.
EU의 리튬이온 배터리 수요는 전기차 시장 확대에 힘입어 2030년 1.1테라와트시(TWh)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전 세계 수요(4.7TWh)의 약 23.4% 수준이다.
하지만 EU는 현재 배터리 주요 원료인 리튬, 코발트, 흑연 등의 자급률은 1~2%에 불과하고, 배터리 소재 생산 능력도 분리막 4.5%, 전해액 1.2%로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배터리 제조 장비 공급업체 수도 한국·중국·일본 등에 비해 열세를 보인다.
이에 EU는 지역 내 배터리 제조역량을 강화하고 재활용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글로벌 배터리 기업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총 30억 유로 상당의 연구개발(R&D) 프로젝트 지원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헝가리는 R&D·생산시설 설립 등 투자금의 약 15%를 보조금으로 지급하고, 개발·R&D 비용 세금 감면 혜택(80~100%)을 제공한다.
폴란드는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프로젝트 비용의 최대 20% 지원금을 지공하고, 폴란드 투자구역(PSI) 법인세 감면(구역별로 10~50%), 기업 규모에 따라 최대 20% 추가 감면 등을 지원한다. 스웨덴 역시 지역개발구역(RDA) 내 건물, 장비, 인건비 등 투자 비용에 지원금을 제공한다.
EU는 특히 미국과 달리 중국 업체들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도입하면서 중국산 제품을 쓴 자동차·배터리 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등 중국에 대한 견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미국 수출길이 막힌 중국 업체들은 LFP 배터리를 중심으로 전기차·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친환경 에너지 관련 인프라에 적극 진출했다. 지난 2021년 중국의 유럽향 그린필드 투자는 33억 유로로 중국 전체 해외직접투자(ODI, Outward direct investment)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그 결과 중국의 EU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2020년 16.8%에서 2022년 34.0%로 상승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점유율은 2020년 68.2%에서 2022년 63.5%로 하락했고, 일본은 같은 기간 14.9%에서 2.6%까지 떨어졌다.
연구원은 우리 정부와 기업이 신속한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 중국 정부의 자금 지원과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기업에 추월당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EU에서 배터리 양산을 시작하면서 발생한 양극재 수출 금액은 2016년 617만 달러에서 2022년 46억 7000만 달러로 약 750배 증가했다. 국내 생산액도 1215만 7000달러에서 53억 7313만 달러로, 취업 인원은 30명에서 1만 1781명으로 늘었다.
배터리는 대규모 설비 투자가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산업이다. 공장 건설과 수율 확보를 위한 운전 기간 등을 고려할 때 향후 1~2년 내 수주 경쟁 결과가 5~6년 이후 시장 점유율을 좌우하게 된다.
김희영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배터리는 국가첨단전략산업이자 수출, 생산, 고용 등의 파급효과가 큰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으로, 향후 1~2년 내 EU시장에 충분한 설비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중국과의 점유율 경쟁에서 밀리면서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 기업이 EU 시장에서 중국 기업과 대등한 여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배터리 산업에 대한 집중적 자금 지원과 정책적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박시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