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노동이라는 개념이 있다. 덴마크의 인류학자 뇌르마르크와 철학자 예센이 '가짜노동: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에서 제기한 아이디어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 노동 시간 중에서 실제로 업무에 전념하는 시간은 절반도 되지 않고 나머지는 가짜노동이라는 것. 이를테면 비생산적인 지루한 회의, 형식적인 보고서 작성, 프로젝트 진행 등이 해당된다. 그래서 저자들은 실제 업무를 제외한 노동의 일부를 휴가 기간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한다.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대기업과 공기업, 정규직, 화이트칼라에 국한되는 이야기다. 중소기업, 비정규직,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는 꿈과 같은 얘기다. 공휴일을 겨우 하루 추가하는 것도 극력 반대하고, 무노동 무임금을 강조하는 자본가들이 받아들일 리가 없다. 노동시간의 절반 이상을 휴가로 하면 임금 삭감 얘기가 나올 것이다. 당연히 노동자들이 반대할 것이다. 그러니 노동자들도 묵묵히 따르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나 현재의 시스템이 합리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는 만큼 혁신의 필요성은 있다. 괜히 바쁜 척 하거나 빈둥대는 시간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가짜노동에 허비하는 시간을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9월 7일 방영된 tvN의 '알쓸별잡'에서 김상욱 교수가 지지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알쓸’ 시리즈의 취지는 ‘잡학(雜學)’의 추구다. 좀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융합’이다. 가짜노동의 문제도 잡학 내지는 융합의 차원에서 접근하면 답이 보일 것이다.
만약 하루 8시간을 매일 빡빡하게 ‘진짜노동’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게 좋을까?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다. 육체노동도 힘들지만, 정신노동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뇌도 쉬어야 한다. 쉼 없는 육체노동은 산재 사고로 나타나고, 쉼 없는 정신노동은 마음을 상하게 만든다. 마음이 상한다는 것은 뇌의 정보처리 활동에 이상이 발생한다는 말이다. 당연히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개인은 피폐해진다. 요즘 MZ 세대들은 그런 직장을 인내하지 않는다.
회사 업무에는 창의력의 발휘가 중요하다. 창의력의 원천은 잡학 지식의 습득이다. 업무와 잡학 지식의 습득 사이에 필요한 것이 몸과 뇌의 휴식이다. 사실 뇌는 쉬는 법이 없다. 잠을 잘 때도 뇌는 쉬지 않는다. 그래서 뇌의 휴식을 위해 ‘멍 때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근무 시간의 일부를 할애해 업무 부담에서 벗어나 다양한 잡학 지식을 추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게 나을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는 근무형태를 창안해 실시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