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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가을의 편지

 

때가 때인지라 문단의 행사도 많고 문학상을 위한 심사도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어젯밤에는 ‘〇〇수필문학상’ 심사를 하게 되었다. 세 사람이 하는데 심사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수상자를 선정하기 위해 응모작을 깊이 있게 살펴보았다. 그런데 수상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적 정성과 ‘수필은 느낌의 시’라는 글맛이 부족하여 수필의 미래가 염려스러웠다.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라는 정신에는 못 미쳐도 누가 보아도 수상작의 무게 중심은 느껴져야 되는 법. 심사를 미루고 한 잔 두 잔 목울대로 넘긴 막걸리에 ‘안마시면 안 되냐’는 제정신의 쓴 소리를 듣기도 했다.

 

돌아와 문을 따고 아파트 거실로 들어서니 냉장고 바람 같은 차가움이다. 불 밝히고 거실 의자에 앉으니 누군가가 그리웠다. 손을 붙잡고 이야기는 못한다지만 전화 통화라도 하고 싶었다. 주변에는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부산 친구와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허허한 가슴의 술기운을 덜어낼 수 있었다.

 

김현승 시인은 가을에는 기도하는 자신에게, ‘겸허한 모국어로 채워달라고’ 했다. 견고한 고독 속에 살면서 기도하고 모국어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찌 김현승뿐이겠는가. 나는 가을에는 편지를 쓰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휴대폰으로 문자 보내기가 아니라 내 심장에서 뿜어대는 피가 혈맥을 타고 온몸을 돌면서 그 혈맥이 손을 움직여 두뇌에서 찾아낸 맑은 모국어를 원고지 칸에 새겨 기도하는 마음으로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추석이라고 큰 선물을 보낸 어느 회장에게 감사 편지를 보낼 것이다. 스승의 날을 비롯해 잊지 않고 찾아오며 선물을 보내는 제자들, 주례의 인연을 생각하면서 변함없이 정을 주는 천안의 김 사장… 그리고 대학생이 된 손자와 꿈을 위해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을 목표로 열심히 학습하는 두 손녀, 때로는 경영자가 된 아들에게도 살아 있는 아버지의 글맛을 보여주며 위로할 것이다.

 

퇴계 이황은 41세 되던 해 맏손자 이 안도가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두뇌가 명석하여 다섯 살 때부터 글을 읽자 퇴계는 『천자문』을 손수 써 가르쳤다고 한다. 퇴계는 맏손자에게 생애 총 153통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퇴계 55세 안도 15 세로 접어들면서 시작되어 퇴계가 70세 안도 30세로 퇴계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16년 동안 이루어졌던 것이다. 당시 퇴계는 시골 상계마을에 살고 있었고, 손자는 서울과 봉화 등지에 머물고 있었다.

지금 시대에 무슨 손편지냐? 고 할 것을 모르고 처음부터 글을 쓴 것 아니다. 추석에 다녀간 손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저 녀석 뒷모습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바라보며 배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편지 받고 부담 느끼지 않고 저희들은 카톡으로 보내도 좋고 아무 반응이 없어도 좋다. 흐름에 맡길 뿐이다.

 

마음 같아서는 하늘나라에 계시는 어머니 아버지 아내라는 여인에게도 편지를 쓰고 싶다. 그러나 그곳 우편번호를 몰라 망설이고 있다. 강물은 흘러간다. 인생도 그렇다. 흐르지 않으면 강도 사람도 생명력을 잃게 될 것이다. 강이 흘러가는 목적지는 바다이고, 내가 가는 길은 귀천의 길일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정성스럽게 편지를 써 보내면서 정적인 삶에 있어 인색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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