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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고성]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1979년 10월 26일 밤. 궁정동 안가에 모인 유신정권의 수뇌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며 터진 부마항쟁에 대해 격하게 논쟁 중이었다. 국내문제를 제대로 대처치 못했다는 박정희의 질타에 이어 차지철 경호실장이 입에 바린 소리로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은 순진해서 강경책을 못 쓴다고 비꼬았다. 차지철은 캄보디아의 200만 사망자를 들먹이며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헛소리에 김재규는 준비한 총을 꺼내 들었다. 이런 버러지 같은 놈과 정치를 하니 정치가 제대로 되겠냐며 방아쇠를 당겼고 놀라는 박정희에게도 총구를 겨누며 말했다.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10·26사태의 현장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김재규는 파국으로 가는 정국을 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야당과 대화가 필요하다고 확신했지만, 박정희는 힘으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믿었다. 박정희에게 정치는 무용지물이고 야당은 건건이 반대만 하는 상종 못 할 대상이었다. 그래서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제명하고 이에 반발해서 총사퇴서를 던진 야당 의원들을 선별적으로 수리하려고 했다. 부산 마산지역에서 터진 유신철폐의 민주화 시위는 계엄령을 내렸음에도 가라앉질 않았다. 시위는 수도권으로 올라오기 직전이었다. 그야말로 정국의 위기였다. 대국적 정치가 절실히 필요한 때였지만 박정희는 기회를 놓치고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다.

 

정치를 대국적으로 한 대표적인 정치인은 A.링컨이다. 악조건 속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한때 그를 맹비난하던 라이벌들을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에 앉혔다. 미국의 통합을 위해서는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며 반대파들과도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설득했다. 정치가 대화와 타협이 생명임을 실천한 것이었다. 미국을 최초로 노예제 없는 나라, 연방제 국가의 탄탄한 초석을 다져 놓은 인물이 링컨이었다. 과거 DJ도 한때 정적이었던 김종필과 손을 잡고 연립정권을 세웠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야당과의 연정까지를 제안했다. 모두 대국적 정치였다.

 

추석 명절의 즐거움이 끝나고 다시금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야당 대표의 영수회담 제의가 거절되었다. 영수회담이 도깨비방망이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난제가 한둘이 아니건만 여전히 야당 대표는 대화의 상대가 아닌 확증적 범죄자란다. 대통령실 주변의 숱한 유죄 판결받은 범죄자들은 그대로 두고서 말이다.

 

같은 기준으로 친인척과 모든 공직자를 수사할 것이라면 모를까 이제 그만큼 했으면 되지 않았나. 언제까지 전 정권 탓에 야당 대표만 탈탈 털 것인가. 제발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자. 물가, 가계부채, 환율, 수출, 불안한 대외정책 등 여야의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가야 할 정치가 산적하다. 당장 대화부터 하는 것이 한가위 민심이고 국민에 대한 정치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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