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드디어 윤석열 탄핵이 완결됐다. 탄핵 절차가 진행된 지 111일 만에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일치의 결정으로, 비상계엄 선포 이후 4달 만에 비로소 헌정질서가 회복됐다. 헌재의 발표 소식은 전 세계로 타전됐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모두 톱기사로 보도했고, 영국 BBC방송은 기뻐하는 시민들의 함성이 마치 월드컵 우승한 것 같다고 했고, CNN은 생중계했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소식이 세계적 이슈가 된 것이다. 실제로 21세기 들어서 전 세계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미국은 극우파 트럼프 대통령이, 이탈리아의 총리도 극우파 출신이며, 아르헨티나에서도 극우적 지도자가 등장하였다. 튀르키예는 22년 독재 중인 대통령이 집권 연장을 위해 야당 지도자를 체포했다. 민주화의 모범국가인 대한민국의 계엄발동은 충격이지만 그것을 시민의 힘으로 2시간 만에 해제시켰고 사법적 판단으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니 세계인의 부러움과 표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과정은 험난했다. 야만적인 레거시 미디어의 공격과 막가파 같은 여당 의원들의 행태, 그리고 한술 더 뜨는 개신교 목사들의 저질스러운 망언과 이들에 세뇌되어 날뛰는 극우적 행동대 등 국론을 분열시키는 암
우려한 사태가 발생했다. 헌정질서를 파괴한 내란죄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52일 만에 석방되었다. 판사는 윤의 구속 시간이 초과하였다며 구속취소를 결정했고, 대한민국의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석방하였다. 검찰총장은 7일 이내에 항고해서 다시 한번 상급 법원의 판결을 기다릴 수 있었음에도 적법절차와 인권보장을 들어 석방지휘를 강행했다. 도대체 지금까지 범죄자들의 구속 기한을 산정할 때 날짜 기준으로 하다가 갑자기 윤석열에게만 시간을 기준으로 적용한 것은 무슨 연고인가. 일부 언론에서는 잘못된 관행을 깨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왜 하필 이 중요한 순간에. 앞으로 기존에 잡아들였던 모든 범죄자가 날짜가 아닌 시간 기준으로 해서 구속해야 한다면서 재심 신청하면 모두 석방할 것인가. 교도소마다 대혼란을 초래될 전조를 보이자 대검은 서둘러 앞으로는 날짜를 기준으로만 삼으라고 검사들에 지시했다. 결국 한 사람만을 위한 법적용이었다. 판검사들은 도대체 왜 여론과 이렇게 동떨어진 판결을 내린 것일까. 그들 모두 배울 만큼 배웠고 아니 최고의 엘리트들인데 왜 국민의 상식과 이렇게 다른 것일까. 영화의 대사처럼 “어차피 국민은 개돼지야. 금방 잊게 되어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 1902-1994)는 1938년 히틀러가 자신의 원래 조국인 오스트리아를 강제 합병하자 나치 제국의 전체주의를 비판한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을 쓰기 시작했다. “인류 역사는 열린사회와 닫힌사회 간 투쟁의 역사였다”라는 전제로 시작되는 이 책은 1945년에 출간되었지만 강렬한 제목만큼이나 지금껏 전체주의를 비판한 최고의 명저로 꼽힌다. 포퍼의 닫힌사회는 비판과 반성 그리고 토론이 불가능한 사회이다. 그곳에서는 오로지 독단적 이데올로기를 강요되는 획일성만이 존재한다. 지도자는 신성하기에 그가 만든 제도나 언어는 금칙이 되어 누구도 비판할 수 없고, 발전은 이미 만들어진 법칙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역사법칙주의가 주도한다. 히틀러의 독일제국, 스탈린의 전체주의 국가, 헤겔의 절대정신으로 우상화된 국가, 마르크시즘에 경도된 국가 그리고 플라톤의 철인국가까지도 닫힌사회이다. 모두 21세기에는 존재할 수도, 존재해서도 안 되는 불량한 국가들이다. 열린사회는 그 반대로 다양한 의견과 비판이 자유로운 사회로,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서로를 인정하고 건전한 소통을 통해
12.3 내란 사태의 해결은 시간문제일 뿐, 다만 엄격한 법 적용으로 시시비비를 가려 반드시 그 결과를 엄벌함으로써 다시는 이 땅에서 문민통치가 훼손되는 일은 없게 하여야 한다. 이직 종결되지는 않았지만 남겨야 할 일이 있다. 12월 3일 한밤중의 거짓말 같은 비상계엄이 발동되자 시민들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갔다. 불법적이고 부당한 계엄 선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국가 기구는 오직 국회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회 앞에는 사람들이 모였고 국회의원을 입장을 막는 군과 경찰을 질타했다. 역사 앞에서 죄인이 되지 말라고. 심지어 어떤 용감한 시민은 돌진하는 군 장갑차 앞을 막아섰다. 마치 1989년의 천안문 사태에서 탱크 앞을 홀로 막아선 이름없는 대학생처럼. 달려온 일반 시민들 덕분에 2시간 48분 만에 국회 의결로 비상계엄은 해제되었다. 12월 22일은 남태령에서 서울 시내로 향하던 농민들의 ‘전봉준 투쟁단’은 경찰 차벽에 막혔다. 돌아가라는 경찰의 경고에 이어서 물대포 등 힘없는 농민들은 진압 직전에 처해 있었다. 그 순간 여의도에 모여 탄핵을 외치던 응원봉 부대(?)가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부모세대의 고마움을 느낀 평범한 대학생과 시민들
어처구니없는 셀프 친위쿠데타로 정국이 안개 속이지만, 차라리 이번 기회에 한국 민주주의가 제대로 재건될 기회가 된다면 전화위복일 것이다. 할 말은 많지만, 올해가 넘어가기 전에 꼭 기록해야 할 일이 있다. 2024년은 우리 근대사 최고의 인물인 수운 최제우가 태어난 지 200주년의 해이다. 그의 학문 세계를 전공하는 연구자는 물론 한국적 윤리관과 민주주의 이념, 생명·생태사상. 페미니즘, 어린이 운동 그리고 소외된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는 법을 깨달은 모든 이들이 경축해야 하는 해이다. 필자는 단연코 수운 최제우를 우리 근대 최고의 인물이라고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의 근대 이후 학문적으로나 운동적 측면으로나 그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운 최제우는 경주에서 유력한 선비의 자제로 태어났지만, 서자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높은 학식을 가졌음에도 과거를 치를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좌절한 그는 주유천하 하던 중 도탄에 빠져 유랑민화 되는 백성들과 중국 중심의 세계관마저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더이상 성리학으로는 조선을 구할 방도가 없다고 판단해 새로운 학문을 만드니 그것이 1860년에 등장하는 동학(東學)이었다. 동학은 모든
전 세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선이 트럼프의 승리로 끝났다.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위대하게)를 외친 트럼프 시대가 재개되면서 국제 사회의 변동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긍정적이라면 우크라이나와 중동전쟁 종식이, 그러나 강력한 슈퍼 트럼프로 돌아온 그가 전개할 보호무역주의 시대의 재개는 매우 부정적일 것이다. 트럼프 2기는 바이든 정권을 뛰어넘어 강력한 통상정책으로 오직 미국만을(America Only) 위한 것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이를 위해 트럼프는 중남미 이민자에 대한 강력 규제와 보조금 감축 그리고 관세를 이용한 대미 수출국의 압박 등을 실시할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바이든 정부의 이민자 정책실패와 보조금으로 외자 유치한 성과를 공격하며 관세부과로 대응했어야 한다고 외쳤다. 당장에 바이든 정부의 압력으로 미국에 대규모 투자 중인 우리 대기업들과 대만의 TSMC 등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관세부과도 현재 3% 수준에서 모든 나라에 10~20%에 이르는 할 것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주요 공격 대상은 중국일 것이다. 미국을 상대로 가장 많은 무역이익을 내는 중국에 60%에 이르는 보복 관세
우리 글로 된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혹자는 월드컵 우승만큼의 쾌거라 한다. 정말 축하할 일이고 대한민국 만세다. 지난 주 스웨덴으로부터 들려온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온 국민을 기쁘게 했다. 온통 부정적인 지표와 소식들만이 쏟아지고 있어 침체할 대로 침체한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다시금 부활케 하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노벨상 수상의 대표 작품이 [소년이 온다]란다. 몇 년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서가에서 뽑아 읽어 보았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이었다. 한 소년의 처참한 죽음을 통해서 드러나는 1980년의 잔혹한 진실 그리고 남은 자들의 처절한 트라우마까지 숨을 참으며 읽기 힘든 대목이 한두 줄이 아니었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이보다 더 잔인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스웨덴 한림원이 발표한 한강 작가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는 고상한 해설은 차치하고라도 그의 작품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시적 표현이자 너무나 솔직한 독백이다. 이제 밝혀지는데 주인공 소년인 동호는 실
1789년 7월 14일 프랑스의 성난 민중들이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을 공격했다. 세금인상을 위한 형식적인 삼부회에 동원된 평민대표들은 사제들과 귀족층의 일방적인 회의결정에 분노해 민중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의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혁명의 열기는 구체제의 파괴를 명분으로 왕과 왕비를 처형하는 등 극도의 공포정치로 이어졌다. 영국은 프랑스보다 먼저 시민혁명을 달성해 의회정치가 일찍 자리를 잡은 나라였지만 혁명 소식은 바로 전달되었다. 그때 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 의회에서 성공한 정치인이었던 에드먼드 버크는 이 사태를 예의 주시했다. 그는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가 영국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급격한 변혁보다는 검증된 과거의 전통을 존중하면서 점진적인 변화를 지지했다. 그는 영국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 프랑스처럼 혁명적 변혁보다도 우수하다는 논지의 글을 썼다. 그 글이 유명한 '프랑스혁명에 관한 고찰'이었다. 여기서 버크는 보수주의(Conservatism)라는 정치사상을 창조해 냈다. 버크의 보수주의는 결코 변화를 거부하는 사상이 아니다. 한 사회의 문명은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이 결합해서 만들어낸 전통적
독일 교민들의 초청으로 온 김에 소도시 기행을 하고 있다. 로마시대의 건축물부터 아름다운 고성과 대형 성당들을 감상하면서 독일 문화를 접하는 중이다. 독일은 중세시대 신성로마제국이었지만 황제는 허수아비이고 지방 영주들의 강력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국가형태였다. 300여 개의 소국이 통일될 수 있었던 것은 1871년 비스마르크라는 탁월한 리더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독일은 지방마다 특색이 강했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어 통일국가이지만 지방자치가 가장 활발한 국가가 되었다. 지자체의 근간인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오늘 유럽의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독일이 부러운 점은 그들의 활성화된 정치교육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민주시민교육이다. 1976년에 체결된 보이텔스바흐 협약(Beutelsbacher Konsens)의 원칙으로 누구든 정치적 자주성과 전문성, 중립성이 보장되면 정치교육을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정당들이 운영하는 정치교육에도 국가의 지원이 있다. 어쩌면 커다란 잡음 없이 독일통일이 완성된 이유에는 이렇게 성숙한 시민을 양성한 민주적 정치교육이 있었다. 두 번째로 독일에서 부러운 점은 교육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우리 사회는 분명 정상적으로 가고 있지 않다.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등 모든 영역에서 갈등과 분열이 증폭되고 있다.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혹자는 윤 대통령이 너무 극우적 유튜브를 많이 시청하기에 모든 것을 정의로운 일반인과 불법적인 범죄자로 구분한다고 한다. 실제로 대통령은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을 통한 국정 운영보다는 오히려 극한 대립을 야기하는 이상한 통치방식을 행한다. 진정 윤 대통령은 정치를 모르는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윤 정부 들어서 한국판 극우를 상징하는 뉴라이트 사관에 경도된 인물들이 지배층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정치권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찬양하는 인물이 국회의원에 당선될 정도이고, 정의의 보루라는 사법기관에도 이런 인물들은 부지기수일 것이다.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부 내에도 통일부 장관과 실세 중의 실세라는 국가안보실 1차장이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물이고, 최근에 좌파 언론 척결이라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KBS와 YTN의 사장들도 그렇고. 심지어는 과거 억울한 국가폭력 희생자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앞장서야 하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위원장도 뉴라이트 출신이다. 한발 더 나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