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선이 트럼프의 승리로 끝났다.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위대하게)를 외친 트럼프 시대가 재개되면서 국제 사회의 변동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긍정적이라면 우크라이나와 중동전쟁 종식이, 그러나 강력한 슈퍼 트럼프로 돌아온 그가 전개할 보호무역주의 시대의 재개는 매우 부정적일 것이다. 트럼프 2기는 바이든 정권을 뛰어넘어 강력한 통상정책으로 오직 미국만을(America Only) 위한 것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이를 위해 트럼프는 중남미 이민자에 대한 강력 규제와 보조금 감축 그리고 관세를 이용한 대미 수출국의 압박 등을 실시할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바이든 정부의 이민자 정책실패와 보조금으로 외자 유치한 성과를 공격하며 관세부과로 대응했어야 한다고 외쳤다. 당장에 바이든 정부의 압력으로 미국에 대규모 투자 중인 우리 대기업들과 대만의 TSMC 등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관세부과도 현재 3% 수준에서 모든 나라에 10~20%에 이르는 할 것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주요 공격 대상은 중국일 것이다. 미국을 상대로 가장 많은 무역이익을 내는 중국에 60%에 이르는 보복 관세
우리 글로 된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혹자는 월드컵 우승만큼의 쾌거라 한다. 정말 축하할 일이고 대한민국 만세다. 지난 주 스웨덴으로부터 들려온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온 국민을 기쁘게 했다. 온통 부정적인 지표와 소식들만이 쏟아지고 있어 침체할 대로 침체한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다시금 부활케 하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노벨상 수상의 대표 작품이 [소년이 온다]란다. 몇 년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서가에서 뽑아 읽어 보았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이었다. 한 소년의 처참한 죽음을 통해서 드러나는 1980년의 잔혹한 진실 그리고 남은 자들의 처절한 트라우마까지 숨을 참으며 읽기 힘든 대목이 한두 줄이 아니었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이보다 더 잔인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스웨덴 한림원이 발표한 한강 작가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는 고상한 해설은 차치하고라도 그의 작품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시적 표현이자 너무나 솔직한 독백이다. 이제 밝혀지는데 주인공 소년인 동호는 실
1789년 7월 14일 프랑스의 성난 민중들이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을 공격했다. 세금인상을 위한 형식적인 삼부회에 동원된 평민대표들은 사제들과 귀족층의 일방적인 회의결정에 분노해 민중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의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혁명의 열기는 구체제의 파괴를 명분으로 왕과 왕비를 처형하는 등 극도의 공포정치로 이어졌다. 영국은 프랑스보다 먼저 시민혁명을 달성해 의회정치가 일찍 자리를 잡은 나라였지만 혁명 소식은 바로 전달되었다. 그때 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 의회에서 성공한 정치인이었던 에드먼드 버크는 이 사태를 예의 주시했다. 그는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가 영국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급격한 변혁보다는 검증된 과거의 전통을 존중하면서 점진적인 변화를 지지했다. 그는 영국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 프랑스처럼 혁명적 변혁보다도 우수하다는 논지의 글을 썼다. 그 글이 유명한 '프랑스혁명에 관한 고찰'이었다. 여기서 버크는 보수주의(Conservatism)라는 정치사상을 창조해 냈다. 버크의 보수주의는 결코 변화를 거부하는 사상이 아니다. 한 사회의 문명은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이 결합해서 만들어낸 전통적
독일 교민들의 초청으로 온 김에 소도시 기행을 하고 있다. 로마시대의 건축물부터 아름다운 고성과 대형 성당들을 감상하면서 독일 문화를 접하는 중이다. 독일은 중세시대 신성로마제국이었지만 황제는 허수아비이고 지방 영주들의 강력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국가형태였다. 300여 개의 소국이 통일될 수 있었던 것은 1871년 비스마르크라는 탁월한 리더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독일은 지방마다 특색이 강했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어 통일국가이지만 지방자치가 가장 활발한 국가가 되었다. 지자체의 근간인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오늘 유럽의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독일이 부러운 점은 그들의 활성화된 정치교육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민주시민교육이다. 1976년에 체결된 보이텔스바흐 협약(Beutelsbacher Konsens)의 원칙으로 누구든 정치적 자주성과 전문성, 중립성이 보장되면 정치교육을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정당들이 운영하는 정치교육에도 국가의 지원이 있다. 어쩌면 커다란 잡음 없이 독일통일이 완성된 이유에는 이렇게 성숙한 시민을 양성한 민주적 정치교육이 있었다. 두 번째로 독일에서 부러운 점은 교육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우리 사회는 분명 정상적으로 가고 있지 않다.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등 모든 영역에서 갈등과 분열이 증폭되고 있다.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혹자는 윤 대통령이 너무 극우적 유튜브를 많이 시청하기에 모든 것을 정의로운 일반인과 불법적인 범죄자로 구분한다고 한다. 실제로 대통령은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을 통한 국정 운영보다는 오히려 극한 대립을 야기하는 이상한 통치방식을 행한다. 진정 윤 대통령은 정치를 모르는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윤 정부 들어서 한국판 극우를 상징하는 뉴라이트 사관에 경도된 인물들이 지배층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정치권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찬양하는 인물이 국회의원에 당선될 정도이고, 정의의 보루라는 사법기관에도 이런 인물들은 부지기수일 것이다.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부 내에도 통일부 장관과 실세 중의 실세라는 국가안보실 1차장이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물이고, 최근에 좌파 언론 척결이라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KBS와 YTN의 사장들도 그렇고. 심지어는 과거 억울한 국가폭력 희생자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앞장서야 하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위원장도 뉴라이트 출신이다. 한발 더 나아가
지난주에 수원상공회의소 김재옥(金載沃) 회장의 전기 출판기념식이 있었다. 돌아가신 분도 아니고 살아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물의 전기물이 발간된다는 점에서 거부감이 들을 수도 있지만, 내용을 보니 결코 간단치 않은 인물의 기록이었다. 금수저 출신이 아니면 성공하기 힘든 시대에 입지전적인 인물이란 말이 떠오른다. 하인천역 인근에서 강보에 싸인 채 발견된 아기는 이름은 고사하고 생년월일도 알 수 없었고 부두에서 막노동하던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당시는 6.25 전쟁이 휴전된 뒤라 전쟁고아들이 수없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기는 양부의 성을 물려받았고 발견된 날이 그대로 생년월일이 되었다. 양부의 손에 인천 덕적도에서 젖동냥으로 성장한 아이의 어린 시절은 최 극빈의 삶이었다. 밥 굶기가 허다했고, 겨울에 다리 밑에서 자다가 밤새 내린 눈이 양부와 함께 덮고 자던 거적 위에 소복이 쌓인 모습이나, 아이스께기통과 구두통을 매고 인천항 주변을 외치며 다니던 이야기까지 모두 읽는 이의 상상을 초월한다. 아무리 가난이 일상이었던 시절이라도 이렇게까지 빈한할 지경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양부가 강한 놈이 되라고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부
5월 30일부터 22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시작된다. 늘 그렇듯이 출발은 언제나 희망과 기대감으로 넘쳐난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보면 실망과 심지어는 역대 최악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왜 그럴까? 초심을 잃고 권력 놀이에 빠져 본분을 망각한 행태가 뒤로 갈수록 심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22대 의원들은 21대처럼 무능하고, 분노할 줄도 모르고 심지어는 수박이라는 조롱을 받아도 부끄러운 줄 모르던 의원들이 사라졌으니 다를 것으로 예상해 본다. 정치는 누구나 다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기에 22대 의원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던 전문가들로 구성됐다는 점은 매우 바람직하다. 물론 우리는 지나치게 법조계 출신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폐가 이번 정권으로 완전히 드러났기에 앞으로는 그 비율이 줄어들 것이다. 22대 국회의 초선 비율은 44%이다. 정치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교체율은 현역 의원들에 대한 실망과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감 등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신임 의원 중에는 그동안 검찰·재벌·언론개혁, 인권과 과거사 청산 등 우리 사회의 병폐와 싸워왔던 참신한 인물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어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그
고대 아테네의 현인들은 민주주의를 무지한 다수가 선택하는 나쁜 정치체제로 인식했다. 특히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중우(衆愚)정치로 규정해 대중적 인기에 연연하고, 개인의 능력과 자질, 기여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절제와 시민적 덕목을 경시하는 무절제와 방종으로 치닫는 정치체제로 보았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와 같은 위대한 현자를 못 알아보고 죽음에 이르게 한 잘못된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나라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택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도 국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독재국가들마저 모두 민주주의를 한다고 하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BC 5세기의 민주주의는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을 가진 정치체제였다. 첫째, 법 앞의 평등 둘째, 국민의 정치참여 셋째, 공직자에 대한 통제가 그것이다. 2,500여 년 전의 이론임에도 오늘날까지 그 근본 원칙은 큰 변화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것이 시민들의 정치참여이다. 아테네 시민들에 있어서 정치참여는 시민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였다. 오늘의 정치참여는 어떠한가.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다는 이유로 직접 민주주의는 간접 민주주의가 되었다
기어코 영화 '건국전쟁'이 100만 관객을 넘어섰다. 건국이라니. 우리가 언제 나라가 세웠지? 여하튼 여당 인사들과 공영방송인 KBS에서도 홍보하고 특정 종교 단체는 신도들의 관람을 유도하더니 급기야 청년들은 관람 인증하면 영화비를 돌려준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영화 홍보 방법도 있다니…. 여하튼 제작 측의 의도대로 흥행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를 이렇게 왜곡하여 미화한다고 해서 그의 평가가 달라질까?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다, 제주도 4.3과 여순항쟁에도, 6.25 발발 시 서울시민 안전 메시지 방송도, 한강 인도교 폭파에도 책임이 없었고, 전쟁을 이용한 민간인 학살에는 묵묵부답이요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저해 행위도 없었으며 심지어 3.15 부정선거에도 개입하지 않았단다. 정말로 이런 왜곡된 인식을 가진 사람과 이를 홍보하는 세력들은 이승만 논쟁에서 자신 있다는 것인가.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지만 얼마 뒤 탄핵당했고 미국에 체류하면서 주야장천 독립청원만을 해댄 그의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이승만 논쟁은 할 이야기가 많다. 정부 수립 이전인 해방정국에서는 가장 먼저 분단을 기정사실로 한 정
2024년 벽두부터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우선 북한의 최선희 외무상이 1월 14일부터 17일까지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과 면담하고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회담했다. 회담 뒤 라브로프는 “북한의 안보를 위협하는 어떤 조치도 거부할 것을 촉구한다”라며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음을 부인치 않았다. 최선희 외무상은 푸틴 대통령의 방북을 정식으로 초청했고 긍정적 답을 얻었다. 예견된 바이지만 북한과 러시아의 급격한 강화가 불안하다. 이를 감지한 탓인지 1월 25일에는 중국의 쑨웨이둥 부부장(차관)이 급히 북한을 방문했다. 북중 수교 75주년 준비라지만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에 대한 우려와 북한 달래기가 아닌가 싶다. 미국과 중국의 회담도 있었다. 1월 26일과 27일 양일간에 걸쳐서 태국 방콕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회동했다. 형식은 지난해 11월 미·중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라지만 내용은 대만 선거결과를 두고 향후 중국식 평화통일을 지지해 달라는 중국의 요구와 북한 도발 예방을 위한 중국의 대북 영향력 행사촉구라는 미국의 요구가 주요의제였다. 가장 활발하게 외교활동을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