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이 황해도 곡산의 부사로 발령을 받았다. 떠나는 그에게 대신들이 충고했다. 곡산에 도착하면 반드시 이계심이란 자를 잡아 처형하라고. 전임 부사의 횡포로 곡산 지역 주민 천여 명이 관아에 모여 항의했는데, 그 주동자가 이계심이었다. 도망친 그를 체포해 엄벌하라는 것이었다. 곡산으로 향하는 다산 앞에 12가지의 호소문을 들고 이계심이 나타났다. 모두 곡산 백성을 병들게 하는 내용이었다. 확대하면 그대로 조선을 망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주변의 관리들이 체포 운운하는 것을 물리치고 다산은 오히려 그를 관청으로 불러 억울한 사정을 듣고는 이계심에게 내린 판결은 무죄였다. 다산은 이렇게 말했다. “천금을 얻을 수 있을지언정 너 같이 목숨을 걸고 백성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자는 얻기 어렵다.” 곡산 부사로 부임한 첫 정사를 두고 백성들은 환호했다. 이후 곡산 지역에서의 선행은 이루 다 필설 할 수 없다. 벨기에 브뤼헤 흐로닝언 미술관에는 15세기 네덜란드 화가 헤라르트 다비트의 대표작 ‘시삼네스의 박피(The Flaying of Sisamnes, 또는 캄비세스의 재판)’라는 그림이 있다. 사형대 위에 나체로 누워 있는 남자의 피부를 집행관들이 벗겨 내고 있는 끔
영화 ‘오디세이’가 장안의 화제이다. 3000년 전 호메로스라는 그리스의 음유시인이 썼다는 오디세이는 전쟁이 끝나고 귀향길에 올라 온갖 고생을 극복하고 집에 돌아오는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세계적인 감독이 재해석한 영화 ‘오디세이’는 재미와 볼거리 그리고 생각거리까지를 모두 주는 명작으로 평가되고 전 세계에서 흥행하고 있는 중이다. 서구문명의 근원이라고까지 평가되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유명한 트로이 전쟁을 무대로 하고 있다. ‘일리아드’는 10년째 반복되고 있는 트로이 전쟁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스의 영웅적 이야기라면, 다음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오디세이’는 트로이목마 전략을 통해 트로이 성을 공략하는데 성공한 오디세우스가 고향인 이타카섬으로 돌아가는 10년의 고행길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감독에 의해 재해석된 오디세우스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원전에서의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의 목마 전략을 세운 지략가이자 약간은 야비한 인간이지만 놀란 감독의 오디세우스는 매우 인간적이고 철학적인 고뇌를 거듭하는 인간이다. 그는 10년 동안 그리스 연합군의 공격을 버틴 트로이 왕국이 붕괴되는 와중에 희생되는 트로이 사람들과 귀향길에 쓰러지
개혁(改革, Reformation)은 혁명과 달리 기존의 제도나 기구를 합법적인 방법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혁명이 급진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이룬다면 개혁은 민주적인 절차를 중요시한다. 혁명이 화끈한데 비하여 개혁은 뜨뜻미지근한 모습을 보이지만 기득권의 힘을 억누르고 신진 세력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것을 목표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처럼 역사적으로 개혁이 성공한 사례는 극히 적다. 우리 현대사에도 기득권층에 집중된 권력을 신진 세력 내지는 민주 세력에게 넘기고자 한 개혁의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실패했고 그저 약간의 변화와 약간의 권력 나누기에 그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첫 번째 개혁의 기회는 이승만의 권위주의적 독재정치가 4.19혁명으로 무너지고 정권을 받은 민주당의 제2공화국이었다. 그러나 2공화국은 어떤 준비도 없이 갑자기 들어온 정권에 우왕좌왕 하다가 신·구파의 권력 다툼으로 분당 직전에 놓였고, 그 결과가 박정희의 5·16쿠데타였다. 두 번째 기회는 유신독재가 극에 달한 순간 터진 1979년의 10.26 사태였다. 한순간에 박정희의 권력 공백으로 소위 서울의 봄을 맞는가 싶었지만 양 김 씨의
6·3 지방자치선거가 끝났다. 전투에서는 여당이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야당이 이긴 선거였다. 그렇다. 전반적으로 여당이 광역자치단체장에서부터 기초의원까지 지난 정부와 반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서울과 경상도 지역, 그리고 주요한 보궐 선거에서는 완패하고 말았다. 이 대통령도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선거였다며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반면에 야당은 어쩌면 내란당이라는 오명을 쓴 채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서 기사회생했다. 무엇보다도 여당은 다수의 대권 후보들이 고배를 마신 데 비하여 야당은 살아 돌아온 역전의 용사들(?)로 대권 진용을 갖추게 되었다. 도대체 이 결과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초심을 잃어버린 민주당의 오만함 때문이었다면 지나칠까. 우리가 민주당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들이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뛰어난 능력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한국 정치가 민주주의를 지향하기에 필연적으로 민주적 사고를 가진 정당이 한국 사회를 주도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이다. 국민의힘이라는 야당은 21세기에 시대착오적인 내란을 일으킨 정당으로 지금까지도 그것에 대한 대국민 사과 한마디 없기에 과연 민주적 정당인지에 대한 불신
지난 5월 8일 국회에서는 제10차 개헌안 투표가 있었다. 개헌안은 헌법 전문에 4·19 혁명과 함께 '부마 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의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는 것과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때 반드시 국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지극히 당연하고도 간단한 내용이지만 야권(국민의힘, 개혁신당)은 정족수를 채울 수 없게 투표에 불참함으로써 무산시키고 말았다. 22대 국회 출범 당시부터 개헌의 필요성은 여야 모두가 인정했다. 39년 전인 1987년의 헌법은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서 변화된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 속에서 개헌의 당위성은 확산되었다. 금번의 개헌안 표결도 이미 여야가 공감대를 이루었지만 이재명 독재를 언급하며 야권은 불참하고 말았다. 이제 개헌 문제는 6월 지방자치 선거 이후인 하반기 국회에서나 다시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87체제’라고 불리는 지금의 헌법은 6월항쟁 이후 전두환의 폭압정치를 서둘러 끝내야 할 필요 때문에 권력구조 등 많은 부분이 급조되었다. 제왕적 대통령을 피한다며 5년 단임제로 정하다 보니 역대 대통령 모두 임기 중 업적이라는 압박감에 쫓겨 제대로 된 공적 하나 남기기 어려웠다. 이 같은 권력구조 개
역사의 길은 언제나 쉽지 않다. 생계의 위협은 물론 죽음까지도 불사해야 하는 순간에 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올곧게 그 길을 걸어가는 인물들이 있다. 역사는 이들을 기억해야 하지만, 아직도 그들의 삶은 제대로 기억되지 않고 있다. 묵암 이종일 선생도 그런 분들 중 한 분이시다. 3.1 혁명(운동이라는 표현이 익숙하지만 진행 과정과 목표는 확실히 혁명이다)의 가장 큰 공은 역시 민족대표 33인에게 있다. 몇 사람이 친일의 길을 걸었지만 손병희를 비롯해 몇 분은 옥사하였고, 대부분은 끝까지 변절치 않고 조국의 독립에 몸을 바쳤다. 이종일은 당시 출판사였던 보성사의 사장으로 독립선언서 3만 5000매를 비밀리에 인쇄하여 전국에 배포하는 책임을 맡아 이를 충실히 완수하였다. 그는 33인 중 최고형을 받은 5명 중의 한 명이었고 석방 뒤에도 다시 제2의 독립만세를 준비하다가 실패하고 아사 순국하고 말았다. 충남 태안의 천재로 일찍이 과거에 급제한 그는 구한말의 어지러운 정세 속에서 정3품의 직위까지 올랐지만 벼슬을 내려놓고 독립협회에 참가, 독립신문의 논설 필자로 그리고 순 한글 신문인 제국신문을 발행하고 급기야는 동학에서 천도교로 개명한 종단에
2월 28일 오전 이란의 수도 테헤란 한복판에 미사일이 쏟아졌다. 마침 미국과 핵 협상의 과정에 대한 보고와 향후의 대응을 위해 이란의 수뇌부들이 집결해 있었다.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와 국방부 장관, 참모총장 등이 그 자리에서 폭사했고 트럼프는 이란의 선제공격을 예방하는 전쟁을 선언했다. 트럼프는 이란의 독재자를 처단했으니 이란 국민이 나서서 정권 교체를 하고 자유를 쟁취하라고 독려했다. 그러나 무차별적인 폭격에 이란의 초등학교가 맞아 175명의 여학생들이 숨지자 독재자는 순교자가 되고 트럼프는 비난의 중심이 되었다. 트럼프는 아랑곳 않고 오히려 이란의 자작극이라며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최고지도자를 잃은 이란의 대응이 본격화되면서 전쟁은 걷잡을 수 없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중동지역에 있는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자폭 드론과 미사일이 연일 날아가고 트럼프의 호언처럼 전쟁의 끝은 고사하고 누구도 예측치 못할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전쟁의 포연 속에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고 전 세계의 석유값 폭등에 미소 짓는 자는 오직 전쟁으로 총선거 연기가 가능해진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와 비축유가 가득한 러시아의 푸틴뿐이라고 한다. 하메네이 폭살로 기대했던 이란
이번 달로 대학 강단을 내려온다. 30대부터 매달려 왔던 대학 강의가 어느덧 정년이 되어 마무리하는 순간이 된 것이다. 즐겁고 영광이었지만 가족과 주변 분들에게는 나의 행복에 비례해서 많은 희생을 강요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보람으로 가득 찼던 순간들이었음은 틀림없다. 전공이 정치학이고 그중에서도 한국 정치사상을 전공하다 보니 배워야 할 것들 천지이고 깊이를 더 할수록 존경해야 할 분들이 넘쳐났다. 그럼에도 연구의 순간은 늘 행복했다. 한국 근대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수운 최제우가 창도한 동학사상에 빠졌고, 오늘 대한민국의 기원인 임시정부의 정치적 근간이 된 조소앙의 삼균주의라는 정치사상을 연구할 수 있었던 것도 크나큰 영광이자 보람이었다. 비록 수운 최제우나 조소앙의 사상 근처에도 못 가지만 스스로의 수준을 잘 알기에 만족하며 보낸 연구 시간이었다. 얕은 지식이나마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행복도 뺄 수 없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좌우명인 “지금 최선을 다 하고 있는가?”를 되새기며 자신에게 늘 “나는 강의실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를 묻고 또 묻기를 거듭했다. 그래도 부끄러웠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 더 열심히 가르치
2026년이 밝았다. 매스컴에서는 병오년의 붉은 말의 해라고 호들갑이 넘친다. 그러나 꼰대 마인드로는 아직 음력으로는 을사년이다. 병오년은 2월 17일 설날부터이므로 지금은 그저 2026년 신년이고 1월일 뿐이다. 해마다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하는 교수신문에서는 2025년을 변동불거(變動不居)라고 했다. 정말 다사다난한 2025년을 가장 잘 표현한 성어인 것 같다. 세월은 흐르지 않는 것 같아도 결국은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세상을 변화 발전시킨다는 의미이다. 느닷없는 한밤중의 계엄령 선포로 시작된 혼란과 대통령의 탄핵 그리고 이재명 정부의 등장. 그 과정의 주역은 단연코 민주주의를 지켜낸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이었음이 확실하게 증명된 해가 2025년이었다. 2025년에는 정말 너무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서슬 퍼런 권력자들의 민낯이 드러나고, 심지어는 최고의 권력기관인 검찰청과 국군 방첩대는 권력 남용과 쿠데타 부대라는 오명을 쓰고 사라지게 되었으며, 아직도 내란의 주범은 온갖 추악한 언행으로 사법부를 농단하고 있는 등 우리의 수준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특별히 우려되는 청년층 일부의 극우화 현상도 두드러진 해였다. 서부지원의 폭력사태로 상징되는 극우화 모습이
아돌프 아이히만은 독일 나치의 중령계급이었다. 비교적 낮은 계급이었지만 그는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뒤 나치 수뇌부를 재판한 뉘른베르크 법정에 반드시 서 있어야 할 인물이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유태인학살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추진한 실무 책임자였기에 반드시 심판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치가 점령한 지역마다 수거(?)된 유대인들은 그들만의 집단 거주지인 게토에서 생활하다가 유럽 전역에 있었던 아우슈비츠 같은 유태인수용소로 이송되어 차례대로 가스실에 들어가 학살되었다. 이때 아이히만은 가장 빠른 시간내에, 가장 적합한 수용소로 그들을 이송하는 열차 시간표를 작성해 유대인에게는 누구보다도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전후 당연히 체포되었어야 할 그는 사라져 멀리 아르헨티나에서 이름과 신분을 속이고 15년을 숨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정보력과 끈질김으로 무장한 이스라엘판 국정원이 모사드에 걸려 1960년 체포 납치되어 이스라엘의 전범 재판에 넘겨졌다. 마침 히틀러를 피해 미국에 망명해 연구 생활을 하던 독일 출신 유대인 한나 아렌트는 잡지사 뉴요커에서 법정 취재기를 청탁받고 이스라엘로 날아갔다. 아이히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