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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칼럼] 빈대 정부합동본부와 대통령

 

지난 주, 직장의 인터넷 공지게시판에 정부에서 보낸 공문이 하나 떴다. 제목이 눈길을 확 끌었다. “빈대 정부합동본부 구성, 운영안”. 눈을 씻고 다시 봤다. 정말로 빈대 정부합동본부였다. 세부 내용은 이렇다. 11월 3일부터 별도 상황 해제 시까지 복지·질병·행안·교육·법무·국방·문체·고용·국토부 등 전 관계부처가 모여 평일 하루 한번 씩 회의를 열겠다는 거다. 그리고는 낮과 밤에 걸친 '빈대 발견방법'을 별도로 상세히 첨부해 놓았다.

 

DDT 사용 이후로 사라졌던 빈대가 다시 나타났다. 해외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해충이 사람들의 두려움 대상이 되고 있다. 그로 인한 건강악화와 불편 해소가 중요하니, 이렇듯 세심히 신경을 쓰는 걸 어찌 나쁘다 하겠는가. 하지만 공문 내용을 읽으면서 내 마음에 천둥처럼 떠오르는 생각은 이런 거였다.

 

159명이 생목숨 잃은 이태원 참극이 일어난 지 갓 1년이 지난 시점 아닌가. 윤석열 정부는 그 황망한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과연 무슨 일을 했는가?

 

사안에는 경중이 있고 우선 순위가 있는 법이다. 이 정부에 대하여 참극을 철두철미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정부합동본부’까지는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다. 아무리 그러하다 해도, 서울광장에서 열린 참사 1주기 공식 추도식에까지 대통령과 국무위원 전원이 불참했다. 국민의힘 대표 역시 불참했고, 나머지 세 명 정도 간부만 개인자격으로 참석했다. 정부 여당의 핵심부가 이태원 참극에 대한 공식 책임을 결코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무언의 행동이다.

 

그 대신 윤석열 대통령은 성북구의 한 교회에서 열린 별도의 추모예배에 참석했다. 후문에 따르면 이 행사조차도 예배 전날 갑자기 대통령실에서 연락이 와서 마련되었다고 한다. 일반 교인들에게는 공지조차 되지 않은 채, (화장실 공사 중이라 어수선한 교회의 3층 본당에서) 그냥 대통령과 측근들 몇몇이 모였다는 거다. 이것이 정녕 사실이라면 저런 이들에게 스스로 생명과 안전을 맡긴 국민 된 처지가 너무 비참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을 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왜 이런 무리수를 감행했을까.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 서울광장 추도식에 모인 유가족과 시민들의 분노를 정면으로 맞닥뜨릴 용기가 없었던 거다. 앞 뒤 가리지 않고 그저 자리를 피하고 싶은 욕구의 발현이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자들이 무슨 새삼스레 국민을 위하는 척 ‘빈대 정부합동본부’인가 이 말이다.

 

빈대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빈대 이야기로 마무리하자.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라는 속담이 있다. 작은 것에 빠져 정작 큰일을 자초한다는 말이다. 윤석열 정부의 행태가 꼭 그렇다.

 

2023년 한 해 동안 대통령은 해외순방을 9번이나 나갔다(아직 더 남았다). 여기에 소요되는 국민의 혈세가 무려 578억원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대다. 외국에 나가 정상외교 하겠다는 걸 뭐라 할 수는 없다. 문제는 대통령으로서 짊어질 보다 중요한 책무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에 앞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일이다. 정부도 인간이 만든 조직이니 실수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만에 하나 그럴 경우 진정한 마음으로 그것을 사과하는 것, 다시는 그런 참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발본색원 책임자를 문책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바로 그것이다. ‘빈대 정부합동본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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