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독전 2’는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로 직행한 ‘독전 2’는 공개 일주일 만에 세간에서의 평가가 급전직하했으며 이에 따라 인기 순위에는 오르고 있으나 비호감 순위도 아주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독전 2’의 평가는 왜 바닥인가. 그건 아무래도 전편의 인기가 매우 높았으며 그에 따른 기대치가 높았던 것 때문으로 보인다.
요즘의 관객들, 영화 시청층들은 이미 시즌 물에 대한 학습효과가 높은 사람들이다. ‘제이슨 본’ 시리즈는 회를 거듭할수록 심도가 깊어졌다. 주인공 제이슨 본의 감정과 사고, 인간관계에 뭔가가 자꾸 더 생겼다. 그의 행동 동기에 대해 사람들은 점점 더 동화돼 갔다. 그게 2편, 3편, 4편이 나오더라도 사람들이 지루해 하지 않고 계속해서 몰아 보기까지 하게 만든 이유이다.
그에 비해 ‘존 윅’ 시리즈는 철학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이 택한 전법은 액션의 강도, 그 기술력이다. 존 윅은 회를 더 해 갈수록 가장 화려하고 가장 진보된 액션의 기술을 선보였다. 그렇다면 ‘독전 2’는 ‘독전 1’에 비해서 뭐가 더 나아졌는가.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생각은 더 나아진 게 하나도 없다,이다. 그래서 입소문이 안 좋은 것이다. 더 나아진 것이 없으니까. 영화는 늘 더 나아져야 하는 법이니까. 그 한 걸음의 진화에 실패한 점이야말로 ‘독전2’의 가장 큰 패착이다. 패착 1.
결과가 이렇게 된 데에는 이야기의 설정 자체 때문이다. 이건 스포일러라 볼 수 없으니 밝히는 바인데 ‘독전 2’는 전편의 마지막 장면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내용이 아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데 이는 이야기가 진전되는 것이 아니라 복기되는 것을 의미하는 바, 이렇게 되면 얘기가 진화될 수가 없다.
복기는 어쩔 수 없이 동어반복, 중언부언이 된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걸 다시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독전 1’의 마지막 장면은 광역 수사대 조 팀장(조진웅)이 악당 브라이언 이사(차승원)를 마약 라이카 제조 유통 조직의 수괴로 체포하고, 사실은 그가 아니라 서영락 대리(류준열)가 이 선생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가 숨어 있는 노르웨이까지 가서 그와 담판을 벌이고 나온다는 얘기이다.
브라이언을 총격전 끝에 체포해 낸 용산역과 서 대리가 숨어있는 노르웨이로 가기까지 사이에 시간 차가 존재한다. ‘독전 1’은 그래서 뭔가 정리해 내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정리 안 한 느낌을 주고 바로 그 점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냈던 측면이 있다. ‘독전 1’의 역설적인 인기 요인이었다.
그런데 ‘독전 2’는 그 사이의 시간과 공간을 다 까발리는 내용이다. 조 팀장이 스스로 수사를 재개해 용산역 사태부터 노르웨이 담판 때까지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가 노르웨이까지 오는 동안 어떤 일을 겪었고, 과연 이 선생의 정체 하나만큼은 완전하게 파악했는지, 그렇다면 과연 이 선생은 누구인지를 담아내고 있다.
그 이야기의 구술, 전개의 과정이 나름 눈물겹고, 꽤나 고생했지만, 무엇보다 나름 성의가 있었다고 보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걸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선생은 누구인가. 이 선생은 모두일 수도 있으며 이 선생은 아무도 아닐 수 있다. 그런 식의 태도가 더 중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이 선생의 실체를 밝히려 한다. ‘독전 2’의 또 다른 패착이다. 패착 3.
이 선생이 누구인지 관심이 없어진 것은 곰곰이 생각하면 진하림이 죽었기 때문일 수 있겠다. 1편에서 가장 처절한 악한의 캐릭터였던 연변 마피아 진하림(김주혁)은 죽었다. 영화 속에서 진하림은 죽었고 현실에서도 김주혁이 사망했다.
아마 그런 점들이 진하림과 김주혁이 좇던 이 선생의 정체’따위’를 사라지게 한 이유일 수 있다. 이번 ‘독전 2’의 시나리오 작가라면 대중 관객들이 갖고 있는 영화에 대한 기억, 추억, 재생의 방식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진화하는 것임을 생각했어야 했다. 이번 ‘독전 2’에서 진하림의 과거 모습은 배우 변요한이 대신한다. 그리고 그의 악랄한 캐릭터는 또 다른 연변 여인, 섭소천, 일명 ‘큰 칼’(한효주)이 대체한다.
김주혁이 변요한으로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은 서 대리 역의 류준열이 배우 오승훈으로 교체된 것이다. 대중적으로 아마 이 부분이 가장 반발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오승훈은 서 대리 캐릭터의 연장을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고 나름 열심히 역할을 소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애초부터 무리한 일이었다. 특히 형사 조 팀장 역의 조진웅과 붙는 신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자꾸 류준열이 생각나게 된다.
사람들은 그 둘을 ‘브로맨스’적으로 바라 봤다. 오죽했으면 이번 2편에서도 브라이언의 입에서 “사랑하는 사람끼리 대화 한번 해 봐요” 식의 이죽대는 대사가 나왔겠는가. 류준열을 교체한 것은 ‘독전 2’의 패착 3이다. 그리고 가장 큰 패착!
기본적으로 ‘독전 2’가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예민해졌다. 이상한 것, 자신들의 취향에 좀 맞지 않는 것이 단 하나라도 나오면 그런 생각과 의견을 SNS를 통해 집단화하고 특정 작품, 특정 배우, 특정 인물을 겨냥해 ‘이지메’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회가 극단화되고 있고 점점 더 그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한 가운데에 ‘독전 2’가 놓인 셈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효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효주의 연기에 말들이 많이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판의 핵심은 그녀가 이번 영화에서 매우 과장된 연기를 펼쳐 보였고 그게 한효주와 맞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뒷부분, 그러니까 한효주와 맞지 않는다는 점은 아마도 드라마 ‘무빙’에서 선보인, 비교적 착하고 순수한 이미지 때문으로 보인다. 불행하게도 ‘무빙’과 ‘독전 2’는 붙어 있다. 두 작품 사이에 조금이라도 시차가 있었다면 이런 얘기까지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의 개봉과 공개 시점이 얼마나 민감한 것인 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한효주가 이번 영화에서 심할 만큼 ‘오버액션’을 펼쳤고 그게 눈에 거슬린다는 얘기도 다소 억울한 부분이 있다. 한효주는 김주혁을 따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영화 속에서 그 둘은 오누이 사이이기 때문이다. 섭소천도 진하림만큼 독하고 지랄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런 캐릭터 라이징은 한효주의 선택도 아니었을 것이고 한효주의 탓도 아닐 것이다.
따라서 ‘독전 2’가 보인 몇 가지 패착의 원인은 모두 감독 백종열과 제작사 용필름에게 돌릴 수밖에 없다. 영화의 모든 영광은 감독에게 돌아가지만 모든 비판과 책임을 묻는 것도 역시 감독과 제작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감독 백종열의 가장 큰 실수는 이번 2편을 1편 이상의 재미와 인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해는 가지만 그런 점들은 제작자와 제작사가 좀 더 면밀하게 들여다봤어야 했을 것이다. 1편의 장점은 스타카토 형식으로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1편을 ‘유주얼 서스펙트’의 한국판 마약 액션 영화로 새롭게 치장시켰다. 그런데 이번 2편은 모든 걸 다 설명하고 가려 한다.
브라이언 등은 왜 이 선생을 흉내 내려 했는지, 진하림-섭소천 남매는 왜 그렇게 이 선생 눈에 들려고 했는지, 서 대리는 왜 그렇게 모든 기획과 계획을 짜서 이 선생의 뒤를 쫓는지, 형사 조 팀장의 광기에 가까운 추적의 욕망은 어디에 기인하는 것인 지 그 모든 것을 다 설명하려 한다. 그 다변(多辯)의 서사가 이번 2편의 실제 패착이다. 패착 4! 무엇보다 이 선생의 정체’따위’는 설명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번 2편의 시청(관람)은 꽤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의 최근 작품 가운데 ‘노란 문 :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처럼 홀대받는 수작도 있고 ‘독전 2’처럼 대접받는, 망작에 가까운 괴작도 있다.
사람들은 결국 올바른 길을 선택하겠지만 넷플릭스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하기사 이번 ‘독전 2’를 두고 ‘카터’만큼 엉망이다 라는 얘기까지 나왔었다. 근데 뭐, 거기까지는 아니다. 넷플릭스가 자꾸 한국 영화판을 흐리게 하는 방향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좋아할 일은 아닐 것이다. 실로 다행스러운 일은 2편의 결론을 보고 있자니, 3편은 만들어지지 않겠다는 점이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