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는 '주식방문'·'음식방문이라'·'언문후생록' 등 고전 한글 요리서를 통해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기까지의 음식문화를 살펴본 '조선 요리 비법-장서각 소장 주식방문·음식방문이라·언문후생록 역주'(주영하 외)를 펴냈다.
▲고전 한글 요리서의 학문적 가치와 이에 주목하는 이유
신간 '조선 요리 비법'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한글 요리서인 '주식방문'·'음식방문이라'·'언문후생록'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19세기 이후 필사된 이들 한글 요리서는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의 음식문화가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다. 게다가 병서 표기, 음운 변화 등의 특징도 돋보여 국어학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신간은 음식인문학자인 주영하 교수를 중심으로 국어학·음식학·생활사 연구자들이 함께 참여해 학제 간 연구의 모범을 보여준다. 신간의 구성도 이미지와 원문 정서를 일대일 대응으로 배치해 교차 검증할 수 있게 했고, 주석에는 국어학적 지식과 물명(物名) 정보를 풍부하게 수록해 학술적 기량을 높였다. 특히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역은 조선시대부터 개화기까지의 고전 요리를 현대에 재현하고 새로운 요리로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선시대 한글 요리서는 역사의 면면과 얽혀 있는 음식문화의 보고(寶庫)
조선 제21대 왕 영조는 52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한 소문에 끈질기게 시달렸다. 바로 이복형이자 선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이야기다. '경종실록' 4년 8월 22일의 기록에 따르면 경종은 복통과 설사에 시달리다가 끝내 숨을 거두었다. 원인으로는 그로부터 이틀 전 먹은 생감과 게장이 지목되었는데 상극이라고 하는 감과 게의 조합은 이제는 엉성한 논리임이 드러났지만, 당시에는 실록에서도 “의가(醫家)에서 매우 꺼리는 것”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위험하게 여겨졌다.
이 책에 수록된 '음식방문이라'에는 감·배·게를 함께 먹지 말라는 구절과 더불어, 조선시대 음식문화에서 각별히 유의해야 할 지침을 함께 싣고 있다.
“감과 배와 게를 함께 먹지 말고, 과실이 땅에 떨어져 구더기가 꼬인 것을 먹지 말며, 먼저 익어서 떨어진 과실은 반드시 독한 벌레가 숨어 있을 것이니 먹지 말아야 한다. (564쪽)“
▲음식문화에 담긴 우리 선조들의 민간신앙과 재치
옛날부터 음식에는 각종 신비하고 주술적인 이야기가 함께 따라다녔다. ‘낙지’를 먹으면 시험에 ‘낙제’한다, 게(蟹)를 먹으면 시험에 떨어져(解) 고향으로 가야 한다. 이 이야기들은 허황하고 어처구니없게 들릴지언정 우리 민속의 일면을 구성하는 요소임은 분명하다.
이 책에 수록된 '음식방문이라'에서는 밤을 잘 굽는 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여러 개 중 남몰래 하나를 빼내는 데 성공하거나 눈썹에 문지른 뒤 구우면 타지 않는다고 한다. 그 효능이 일반적인 미신과는 달리 기복과 구체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터무니없는 조리법은 웃음을 자아내며 선조들의 재치를 짐작하게 한다.
”밤 구울 때 타지 않게 하는 방법. 밤을 구울 때 그중 하나를 남이 모르게 손에 쥐어 감추고 구우면 모든 밤이 타지 않는다. 구우려는 밤마다 눈썹 위에 세 번씩 문질러 구우면 타지 않는다. (569쪽)”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 한글 요리서에 학술성과 고증적 가치를 더하다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음식인문학자인 주영하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는 그동안 '글로벌 푸드 한국사', '그림으로 맛보는 조선음식사' 등 음식문화와 관련해 여러 교양서를 펴냈다.
이번에 그가 기획하고 공동연구를 주도한 '조선 요리 비법'은 학자로서 그의 학문적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는 신간이다. 한글 요리서를 발굴해 선정하고 영인·정서·역주를 함께 진행한 것은 물론, 전반부에 쓴 해제에서는 장서각 한글 요리서 3종의 서지와 구성을 꼼꼼하게 분석함으로써 고증적 가치를 더했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