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올해로 10년이다. 공영방송 KBS가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은 당연하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KBS에서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 방송을 4월이 아닌 6월 이후로 연기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전체 제작 과정을 따지면 80%, 촬영도 40% 이상을 이미 진행했다고 했지만 지시는 철회되지 않았다. 총선 전후 한두달을 영향권으로 본다는 윗선의 인식과 판단 때문이라니 이해가 가질 않는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KBS 사장과 면담하고자 방송국을 찾았다. 준비 중인 다큐가 세월호 생존자의 삶을 다독이고 재난 참사 피해자와 시민의 연대를 꾀하는 내용이었다는데, 이 내용이 대체 선거에 어떻게 영향을 준다고 보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장은 만나주지 않았다. 일정을 다시 잡고 찾아오라는 공허한 답변뿐이었다.
세월호 다큐가 4월에 방송이 된다고 할 때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KBS 본관 앞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2월 21일 열린 첫 촛불집회는 눈발이 날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 진행됐다. 120명이 넘게 모인 참석자들은 세월호 다큐를 계획대로 4월 18일에 방송하라고 촛불을 밝혔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를 4월에 방송하라는 시청자 게시판 청원에는 하루 새 1천 명이 넘는 동의수가 모였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전원 구조라는 ‘보도 참사’는 10년이 지났어도 잊히지 않고 잊을 수 없는 언론의 부끄러운 기억이다. 사실 확인 과정 없이 받아쓰기 보도 경쟁에 나선 언론들 때문에 온 국민이 혼란에 빠졌었다.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기레기’라는 멸칭도 그때 생겼다. 세월호 관련 검색어가 상위를 차지하니까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기사여도 참사와 관련한 표현을 쓰고 클릭 장사를 유도해서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사건의 본질과 동떨어진 유병언 회장 일가 기사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었다. 도피 생활 중에 시켜 먹은 배달 음식 종류까지 보도한 언론들이 정작 검찰의 수사 문제는 제대로 지적하지 않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 유가족과 생존자, 피해자를 위한 윤리를 고민하지 않았고 보상금에 연관 짓거나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식으로 덧씌워 되레 논란을 확산시킬 보도를 이어가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는 것이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편성을 바꾸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총선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며, 그 영향에서 우려하는 것이 무엇이길래 사장이나 제작본부장이 나서서 설명도 못 하면서 편성을 바꾸려 하는 것인가 말이다.
‘4월 16일을 기억하자’는 것은 ‘안전한 나라를 만들자’는 우리의 약속이다. KBS가 진정한 국민의 방송이고, 수신료의 가치를 보여주겠다고 한 약속을 위해 어떤 결정이 올바른지 제대로 판단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