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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 우리는 상실가족입니다

 

여기, 딸을 기다리는 아빠가 있습니다. 아빠는 여섯 살 준원이가 벽에 그렸던 낙서를 이십 년째 쓰다듬고 있습니다. 아빠에게 딸의 낙서는, 이십 년이 다시 흘러도 아물지 않을 상처입니다. 죽어 눈 감는 순간까지 놓을 수 없는 일말의 기대입니다. 2004년 4월, 여섯 살 준원이는 집 앞 놀이터에서 사라졌습니다. 사라짐은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롭니다. 딸을 잃은 아빠의 시간도 그때 함께 멈췄습니다. 멈춘 시간을 더듬으며 딸을 찾아 떠돌던 아빠는 직장에서 해고되었습니다. 일상에서 추락하고 희망으로부터 추방당했습니다. 준원이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아빠의 시간은 오늘도 준원이가 사라졌던 놀이터 주변을 맴돕니다. 딸을 잃은 못난 아빠라서, 이름 대신 죄인이라는 명찰을 달고 서성거립니다.

 

해마다 이만여 명의 아이들이 실종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준원이처럼 여전히 실종 상태인 아이들도 있습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이십년 넘게 실종 상태인 아이들도 859명이나 됩니다. 세 살이던 미정이는 1977년 서울에서 실종되었습니다. 실종될 때, 미정이는 줄무늬 티셔츠에 맬빵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눈동자에 하얀 점이 있던 경실이는 1975년 서대문에서 실종되었습니다. 실종될 때, 경실이 나이는 세 살이었습니다. 강진에 살던 성주는 분홍색 샌들을 신고 있었지만, 부천에 살던 선영이는 신발도 신지 않은 상태로 실종되었습니다. 실종될 때, 성주는 일곱 살, 선영이는 두 살이었습니다. 실종된 그날, 시간이 멈춰버린 것은 미정이와 경실이와 성주와 선영이의 엄마 아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길을 잃은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어떤 시간과 무슨 공간 너머에서 울먹이고 있을까요. 그때,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와 아빠는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까요. 어떤 시간과 무슨 공간을 견디며 스스로 감옥살이를 하고 있을까요. 상실의 깊이는 상실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자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것이라서, 공감이라거나 소통이라거나 치유 같은 말을 뱉는 것조차 조심스럽습니다. 그러함에도 감히 상실이라는 단어를 문장으로 옮기는 까닭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 상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실을 유예(猶豫)한 체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살아낼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유예할 수 있고, 망각할 수 있고, 무뎌질 수 있는 것이 상실이라서 말입니다.

 

우리는 상실가족입니다. 이미 상실하였거나 머잖아 상실할 사람들입니다. 상실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습니다. 예고하지 않는 게 상실이라서 준비할 수도 없습니다. 실종이 그렇고, 사고가 그렇고, 질병이 그렇고, 범죄가 그렇습니다. 아픔의 깊이와 색깔만 다를 뿐, 상실은 도시 곳곳에 입을 벌리고 우리의 발밑을 노립니다. 팽목 앞바다에서도 그랬고 이태원 골목에서도 그랬습니다. 기도나 부적이나 치성으로도 막아설 수 없는 슬픔이라서, 차고 넘치는 곳이 병원 응급실과 장례식장과 화장터와 납골당입니다. 상실을 예고한 체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서로의 상실을 보듬는 건 지극히 온당합니다. 나눌수록 옅어지는 게 슬픔이라고 하였습니다. 부디 이 봄이 가기 전에, 함께 보듬고 슬퍼할 줄 아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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