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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F-4팬텀, 영공 수호의 임무 마치고 ‘퇴역 신고’

55년 대한민국 영공 수호 임무 마치고 명예로운 퇴역
"전설을 넘어, 미래로!" 불멸의 도깨비... 임무 종료

 

6월 7일 경기도 수원 공군 제10전투비행단에서 신원식 국방장관이 주관하는 F-4팬텀의 퇴역식이 거행됐다. 이날 퇴역식에는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을 비롯해 역대 공군참모총장, 역대 팬텀을 조종했던 조종사들과 정비사 등이 참석해 F-4팬텀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신장관의 출격명령을 받은 F-4E 2대가 힘차게 날아올라 마지막 선회 비행을 마친 후 임무 종료 신고를 위해 행사장으로 진입했다. 신장관은 F-4E 팬텀 기체에 ‘전설을 넘어, 미래로!’라는 문구를 적고, 축하 화환과 함께 명예전역장을 수여했다.

 

특히 1969년 직접 팬텀 편대를 이끌고 태평양을 건넌 이재우 공군 예비역 소장(89·동국대 석좌교수)은 “안녕 팬텀, 굿바이 팬텀”이란 말로 작별을 고하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 불멸의 도깨비, 동아시아 영공 패권 경쟁 압도

 

1969년 8월 31일 미국에서 직접 조종 훈련을 마친 6인의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들이 세계 최강의 전투기 F-4D를 직접 몰고 태평양을 건너 대구기지 활주로에 안착했다. 대한민국 공군이 숙원했던 공군 전력 강화의 꿈이 실현된 순간이다.

 

같은 시기 북한은 이미 소련의 최신예 전투기 MIG-21과 전폭기 IL-28 등을 운영하던 상황으로 남북 간 공군 전력의 비대칭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F-4D의 도입은 남북 간 공군 전력의 비대칭을 일소하는 계기가 됐다.

 

1966년 미국은 베트남전의 격화로 이미 맹호부대와 해병 청룡부대를 파병한 대한민국 정부에 추가 파병을 요청했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백마부대의 추가 파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받기로 한 파병 지원금 1억 달러 대신 세계 최강의 전투기 F-4D 팬텀을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한다.

 

한국 전쟁 이후 여전히 경제 회복에 어려움이 큰 당시 상황에서 이 같은 정부의 결정은 남북 간 공군 전력의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절박한 과제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베트남의 전장에서 흘린 피와 땀의 대가로 도입한 F-4D는 당시 전 세계 국가 중 미국, 영국, 이란 3개국만 보유한 최신예 전투기로서 별 볼일 없는 가난한 대한민국이 동북아 최초로 보유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컸다.

 

한편 F-4D의 도입으로 대한민국 공군의 위상은 동북아 최고 전력으로 급상승하게 됐으며, 이는 곧 동북아 공군 전력의 판도 변화를 불러온 일대 사건이 됐다.

 

 

□ 불안한 시국, 영공 수호의 마지막 보루

 

한국전쟁 이후 남북은 그 어느 때보다 잦은 충돌로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휴전선 주변에서 남북 간 충돌은 일상이었다. 특히 1966년 진주 무장공비침투사건과 1968년 김신조 일당의 1.21청와대무장공비침투 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침투사건, 미국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등 굵직한 대남도발 사건들로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일촉즉발의 긴장과 혼돈의 시기 공대공, 공대지 능력을 두루 겸비한 전천후 요격기 F-4D의 도입은 끊임없는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는데 큰 힘이 됐다.

 

1971년 소흑산도에 출현한 북한 간첩선 격침, 1983년 소련 폭격기 TU-16, 1984년 TU-95와 소련 핵잠수함의 침범을 억지하는 등 영공 방위 최일선에서 성공적인 임무를 수행해 국가 안보와 평화유지에 크게 기여했다.

 

 

□ F-4 팬텀, 공군의 핵심전력으로 자리매김

 

전장 19.2M, 최대 폭장량 7.3t, 최대속도 마하 2.4, 전투행동반경 약 870km, 최대 항속거리 약 3180Km. 당시 F-4는 현재의 F-22와 견줄 만큼 당대 최고 성능의 전투기였다.

 

따라서 정부는 꾸준히 F-4 도입을 위한 노력을 지속했고, 1975년 개량형인 F-4E 도입을 위해 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방위성금헌납기’까지 F-4는 공군의 핵심전략자산으로 자리매김 하게 됐다.

 

이로써 팬텀 계열 기체는 RF-4C(정찰기)를 포함해 최대 190여대가 운용이 됐고, 지금은 순차적으로 퇴역해 F-4E 기체가 6월 7일 그간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명예로운 퇴역을 하게 됐다.

 

 

□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 F-4, 국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새겨져

 

F-4 팬텀은 미그기 킬러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전장에서 구 소련제 대표 항공기 미그기를 압도했다. 우수한 무장 능력과 상당한 무게의 탑재량에도 불구하고 마하 2.4의 빠른 속도와 넓은 작전반경이 장점인 F-4팬텀은 방공, 요격, 근접지원 등 전천후 요격기로 지난 55년간 조국 영공 방위의 최일선에서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말했던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의 말처럼 지난 55년 간 대한민국 영공의 수호자로 하늘을 호령했던 F-4팬텀은 이제 명예로운 퇴역식과 함께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한반도 분단의 역사와 함께 영공 수호를 위해 불철주야 날아올랐던 F-4팬텀은 국가 안보와 평화유지를 위한 임무수행을 위해 최선을 다한 고마운 기체로 국민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새겨지게 됐다.

 

 

[ 경기신문 = 우경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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