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다시 국제사회의 관심을 한반도로 돌리고 있다. 6월 19일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을 체결하였다. 다음날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조약 전문 4조에는 1961년 7월 소련과 맺은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에 준하는 자동 군사 지원 내용이 포함되었다. 일방이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는 경우 지체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2000년 2월 체결한 친선·협력 조약에서 수준이 ‘퀀텀 점프’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푸틴이 조약 전문의 수위를 조절할 것이라 점쳤던 전문가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부터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해온 북한은 지난해 9월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을 정점으로 하여, 푸틴의 이번 답방을 통해 두둑한 보상을 받은 셈이다. 국제사회의 군사적, 경제적 대북제재의 수정을 주장하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과의 조약이었다. 물론 양국 형편상 파격적인 수준의 경제협력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군사 행위에 대한 담보는 조약에 불과할지 모른다. 불과 4년전 러시아판 나토(NATO) 즉, 구소련국 군사안보협력체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CIS 6개국)의 가입국 아르메니아가 비회원국인 아제르바이젠과 영토 전쟁을 벌일 당시 푸틴은 군사 개입을 망설이다 뒤늦은 중재로 아르메니아의 항복을 초래한 전례도 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모호한 태도의 나비효과로 최근 아르메니아는 CSTO 멤버십의 탈퇴 선언 등 안보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다.
북한 당국의 의도는 분명하다. ‘전쟁’ 규정의 문제, 미래 상호 군사조항의 실제적 발동보다는 ‘상호안보의 불가분 원칙과 역내 힘의 균형’(6.26 러, 자하로하 외무부 대변인 성명)을 목적 삼는 조약의 상징성과 대외적 파급력이다. 이미 조약 전문 6조에 명시된 ‘다극화된 국제적인 체계수립’으로 가는 길에 자신의 자리가 있음을 美 대선주자들과 자유주의 진영은 물론 브릭스(BRICS)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까지 알리는 효과를 보았다. 러-우 전쟁 이후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해 있는 러시아도 동북아 내 지정학적 건재함을 과시했으니 양측이 유사한 효과를 누린 셈이다.
한편, 이번 조약은 1960년 흐루시초프 서기장의 평양 방문의 취소에도 불구하고 1961년 7월 모스크바를 찾아 소련과의 조약을 성사시킨 북한의 약소국 외교를 연상케 한다. 당시 북한은 중소의 영향력에 따라 시시각각 외교·경제전략을 달리하여 균형을 유지하는 생존법으로 ‘곡예외교’를 구사하였다. 현재는 대북제재를 온몸으로 견뎌내는 주민들의 고통 위에 러-우 전쟁과 미중전략경쟁 하에서 끊임없이 파생되는 중러 사이의 외교적 수요를 균형보다는 선택적으로 취하고 있다. 이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잠시 균형을 잃어도 죽지 않는다는 셈법에 기인한다. 특히 중국이 누리는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위상은 서방진영과의 경제적 신뢰관계로부터 온 선물이기에, 북러와 같은 선굵은 진영외교가 부담스럽다는 것을 북한도 알고 있다. 북한은 한반도의 냉각상황의 지속이 이러한 주도적 이슈 파이팅과 향후 대미관계에서의 협상력 제고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국제정치는 예측과 대비, 작용과 반작용의 영역이다. 외교적 처세에 따라 ‘잃을 것이 많은’ 우리는 한반도에서 어떠한 지정학적 생존전략을 갖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