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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여름 부채와 풍류정신

 

여름날 ‘부채!’ 하면 담양 소쇄원 댓바람 소리가 생각난다. 대나무 숲 사이로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대나무의 바람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부채로써 합죽선의 멋과 신바람은 뭐니 뭐니 해도 남원의 판소리 춘향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옥에 갇힌 춘향이를 만나러 가서 “암행어사 출도야!” 하고 외치면서 소리꾼이 쥐고 있던 합죽선을 쫙 펼칠 때의 후련함과 통쾌한 감격! 그리고 당시의 민주화 즉 신분 차별 없이 남녀평등사상이 깃들어 있는 외침이었기 매문이다. 그런가 하면 한여름 마을 앞 정자나무 그늘 아래서 모시옷을 곱게 차려입은 노인들이 모여 앉아 부채 바람을 일으키면서 흰 수염을 날리던 할아버지들의 풍류적인 삶의 모습이 떠오른다. 선비들 영혼의 바람결을 존중하며 속되지 않고 운치 있는 품격의 멋을 살아내는 그 정신이 그립기에.

 

지구의 온난화에 북극곰은 어디로 가야 하나? 또는 여름이 5개월일 것이라는 등 더운 시절이라서 말도 많다. 나는 소화기가 부실해 찬 음식과 냉방은 궁합이 안 맞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렇게 더운 여름날이면 어머니의 말씀 따라 웃옷을 벗고 샘가에서 팔을 펼쳐 짚고 궁둥이를 높이 쳐들고 있으면 바가지 물을 시원하게 끼얹어주시던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내 아들 다 컸네. 장가가도 되겠어. 하고 덕담까지 들려주시던 내 어머니의 웃는 모습과 함께.

 

얼마 전, 생일날 예쁜 친구에게 부채를 선물 받았다. 아름다운 상자 안에는 삼원색 무늬를 조화롭게 꾸민 크고 작은 부채 두 자루가 있었다.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철에 맞는 선물이었다. 옛시조에 ‘부채 보낸 뜻을 잠깐 생각 하니/ 가슴에 붙은 불을 끄라고 보냈도다./ 눈물로도 못 끄는 불을 부채로서 어리 끄리./’ 정든 사람이 떠난 뒤 보낸 부채를 두고 쓴 고시조를 생각난 대로 내가 적어 본 것이다. 여기에도 풍류정신이 배어 있어 그 멋스러움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내게 부채를 선물한 친구와 흐린 날 순창의 강천산을 찾았다. 강천산은 입구부터 애기단풍이 손 내미는 곳이요 작은 금강산 같은 곳으로 이름이 나 있다. 입구 병풍바위 폭포를 지나면 맨발산행을 할 수 있도록 길은 닦아져 있다. 그 길에서는 아기 다람쥐가 꼬리를 세운 채 앞발을 들고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하는 몸동작이 귀엽기만 했다.

 

아홉 장군 영혼이 서려 있다는 구장군폭포의 두 줄기 폭포수는 의연하고도 긴 호흡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폭포 앞 공간에는 산수정(山水亭)이란 아름다운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산수정에 올랐다, 그런데 이게 뭔가! 내 키보다 높고 둥근 북이 곰팡이가 슨 채로 매달려 있어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누구의 발상이요 어떤 사람의 지시였는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폭포 소리와 깊은 산 숨결을 듣고 더듬으며, 자본주의의 권력과 물욕의 때를 벗고 영혼을 맑게 충전할 일이요. 산수 간의 풍광과 함께 그 정신을 살리라는 정자의 뜻을 북이 꽉 막아버려 구장군 폭포와 제대로 된 강천산의 운치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산수정에서 내려와 ‘이곳에서 몸을 씻으면 지나온 잘못을 씻어준다’는 전설이 있는 곳에서 조심스럽게 발을 닦고 눈 들어 병풍폭포를 보니 마음은 좀 개운해졌다. 출구를 나오면서 생각해 보았다. 잘 먹고 잘 사는 법도 좋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제대로 보고 느끼고 가슴에 차오르는 새로운 기운을 안고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돌아가는 것이 된 사람들의 자연관이요. 조상들의 풍류정신이며 철학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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