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한국영화 중 독립운동을 그린 영화는 그리 많은 편수를 차지하고 있지 못하다. 어쩌면 툭하면 벌어지는 역사 논란들이 영향을 줬기 때문일 수 있다. 이상한 논란에 휘말리거나 공격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제작자나 투자자를 지배할 수도 있다. 홍범도 장군의 위대한 쾌거의 독립운동 전투 ‘봉오동 전투’(2019)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절묘했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이다. 이 영화를 요즘 같은 때에 다시 본다면 어떨까 싶다.
영화 ‘파묘’가 아무리 일부에서 반일 좌파적 영화라며 국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영화라는 식으로 떠들어 댄다 한들 관객 천만을 훌쩍 넘기는(11,913,519명) 대성공을 거둔 것은 어리석은 정치가 역사를 놓고 ‘대중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 정부와 국방부는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는데 홍범도 장군이 고려공산당 활동 전력을 문제 삼았다. 대중들은, 그렇다면 장제스와 마오쩌뚱의 1,2차 국공합작(일본 제국주의와 싸우기 위해 일시적으로 국민당과 공산당이 힘을 합한 것) 역시 장제스의 공산당 활동 전력으로 봐야 하느냐는, 기이한 역사 해석을 요구 받는 셈이라 느꼈다. 홍범도 흉상 철거 문제를 놓고 대중들의 정서적 반발은 컸다. 그 효과가 영화 ‘파묘’에 모인 것이다. ‘파묘’의 천만 관객 돌파를 정부 당국자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의미심장하게 바라 봐야 하는 이유이다. 그냥 영화 한편이 엄청난 돈을 번 정도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허투루 하게 바라 볼 얘기가 아닌 것이다.
2021년 복잡한 외교 절차를 거쳐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귀국할 때의 감동을 사람들은 여전히 잊지 못하고 산다. 배우 조진웅이 국민특사였다. 장군의 유해와 조진웅이 탄 비행기가 한국 영공으로 들어섰을 때 공군 전투기가 옆에 붙었고 파일럿의 무전 음성의 내용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여기는 대한민국입니다. 장군님. 이제부터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배우 조진웅은 백범 김구의 초기 독립운동 시절을 그린 ‘대장 김창수’에서 김구 역할을 했다. 조진웅은 김구를 테러리스트로 격하시키려는 정치권 일부의 움직임에 대해 ‘아주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우 최민식은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해 ‘영화 ‘파묘’가 반일 좌파 영화라면 ‘명량’은 뭐가 되냐?’고 반문했다. 정치인들이 배우보다 못해도 훨씬 못한 세상이 됐다. 그건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곧 안중근의 거사를 다룬 ‘하얼빈’이 개봉된다. 현빈과 박정민 조우진 유재명 등 호화 캐스팅이다. 이 영화 역시, 예상컨대, 수많은 관객들을 모을 것이다. 역사 문제를 왜곡하는 것에 대해, 무엇보다 우리의 자랑스럽고 가슴 아픈 독립운동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대중들의 인내가 임계점을 넘어 섰기 때문이다. 영화 ‘하얼빈’은 그렇게 역사에 화답할 것이다. 과거 빌 클린튼의 대통령 선거 구호를 빗대어 사람들은 지금 이렇게 소리치고 있다. 바보들아. 문제는 역사야!(It’s the history, stup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