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딸에 대하여’는 엄청나게 관객이 몰릴 상업영화는 아니지만 독립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예술영화관을 중심으로 조용히 화제를 얻을 작품이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엉뚱하게 뉴스를 타고 있다. 대전여성영화제와 관련해서이다. 영화의 공식 개봉은 어제(9월4일)였으나 오늘과 내일 이틀간 열리는(9월5~6일) 이 여성 영화 행사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다. 문제는 대전 시이다. 시가 지원하는 보조금 1350만원의 반납을 고리로 영화의 상영을 철회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 대전 시의 주장이다.
영화 ‘딸에 대하여’는 동성애자인 딸이 자신의 파트너를 집에 데리고 들어 오면서부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엄밀하게 이야기 하자면 딸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딸을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딸의 성 정체성을 새롭게 알게 된, 그래서 자신의 성 인지 정체성에 대하여 새삼 깨닫고 돌아 보게 되는 한 중년 여성의 이야기이다. 담담하고 성찰 적이다. 이런 영화를 동성애 영화라 해서 민원을 제기하고 그 민원을 앞장 세워 영화 상영을 못하게 하려는 것은 나치의 마인드에 다름 아니다. 검열과 폭력이다. 아무리 지금의 세상이 온통 비상식적으로 거꾸로 가는 일 천지이고 엉망진창이 됐다 한들 이렇게 까지 일 줄은 몰랐다. 명백하게 창작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이건 이명박 박근혜 시대에도 없었던 일이다. 문화적 쿠데타이다.
고작 1350만원을 수거해 가겠다는 식의 알량한 협박도 이만저만 구차하고 유치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영화제 사무국에서는 이 지원금을 반납할 예정이다. 영화계에서는 모자라게 될 운영비를 십시일반으로 모아 도울 예정이다. 영화인들은 서명 작업에도 착수한 상태다. 한국독립영화협회(회장 백재호)는 이미 성명을 내고 “지난 해 제19회 인천여성영화제에서 인천시가 퀴어 등 의견이 분분한 소재의 영화는 제외시키라고 요구한 사건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며 창작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일련의 행위가 이어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영화인들은 대전 시청 앞에서 시위도 준비할 것이다. 대전 시는 불필요하고 소모적이며 하등의 가치가 없는 전선을 만들어 갈등을 부추긴 셈이다. 의도적으로 보인다. 시 행정이란 원래 일부 특정 종교 단체에서 민원을 제기한다 한들 그것을 중재하고 조율할 일이지 그 등에 냉큼 올라 탈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가 앞장 서서 탄압과 검열을 할 일이 아니다. 대전 시장은 국민의 힘 출신이다.
지상파 드라마에도 동성애 캐릭터가 나오고 아예 퀴어 물까지 나오고 있는 세상이다. 넷플릭스의 ‘영로얄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도 성 소수자가 나오는 시즌 드라마이다. 표현 수위도 만만치 않다. 대전 시는 이런 드라마까지 다 방영을 못하게 막을 것인가. 한 시대의 수상한 기미, 전조는 꼭 정치나 경제, 군사 분야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이 발단이 될 때가 많다. 프랑스 68혁명도 시네마테크 원장 앙리 랑글루아를 해고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영화의 검열은 세상의 검열로 이어지는 법이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