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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의 사소한 발견] 벌레들의 귀환

 

한때 나는 전원주택단지에 몇 년간 산 적이 있다. 단지 안에는 아주 작은 가게가 하나 있을 뿐, 식당이나 마켓이나 문화시설을 가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했지만 주변이 모두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고, 주차할 공간이 넉넉하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면 공원마다 운동기구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끊임없이 내 공간을 침입하는 벌레들 때문에 방심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벌레를 좋아하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벌레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한다. 특히 집을 비운 사이에 내 영역을 활보하거나 점유하고 있었던 벌레들이 인기척에 놀라 쏜살같이 도망가거나 딱 버티고 있을 때에는 머릿속이 뒤엉키고 몸이 얼어붙는다. 그때에는 휴지로 벌레를 눌러 잡는 사람, 책이나 그릇 같은 것으로 살짝 눌러 놓는 사람, 그냥 못 본 체 뒷걸음질치는 사람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소파 밑으로 숨어들어간 벌레는 내가 이렇게 망설이는 동안 안보이는 곳으로 줄행랑을 친다. 몸을 숨긴 후 어디로 매복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 나는 소파에 앉는 것을 두려워한다. 벌레들의 전략은 일단 삼십육계, 그들은 진정성 없이 물러서서 일단 나를 안심시킨다. 저리 작은 체구로 지능적인 술수도 없이 나에게 불안과 안심을 번갈아 조성하는 그놈들이야 말로 수백 세기 전멸하지 않는 고단수 노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벌레라고 다 해충은 아니다. 작고 예쁜 미모로 사랑받는 꿀벌이나 무당벌레, 나비도 있고, 귀한 대접을 받는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도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곤충에 속하지 않지만 우리가 통칭으로 벌레로 인식하는 거미나 그리마는 모기나 바퀴벌레를 잡아먹는다. 지렁이는 땅을 살리며, 친환경 농법의 일부로 사용되는 벌레도 있다. 꽃의 수분을 통해 식물을 존속시킬 뿐만 아니라 꿀과 로열젤리까지 제공하는 꿀벌은 익충의 왕에 속한다.

 

그러나 해충과 익충을 구별하는 것은 순전히 인간의 주관에 의한 것이다. 익충이라도 너무 많이 생겨 주변을 어지럽게 하면 해충이 될 수 있고, 외형이 너무 징그러우면 사람들이 무서워하여 해를 끼칠 수도 있다.

 

전원주택에 몇 년을 살다보니 어느 정도는 벌레들에게 익숙해져서 갑자기 그들이 나타나도 그렇게까지 놀라지 않게 되었고, 내가 싫어하는 벌레로 총칭되었던 그들이 분류되고 서열이 매겨지기 시작하였다. 어떤 벌레는 다른 벌레로부터 나를 보호하였고, 어떤 놈은 나에게는 도통 관심이 없이 그냥 지나갈 뿐이었고, 어떤 놈은 호시탐탐 내 피를 노렸다. 나의 적이라고 생각했던 그들 모두가 사실은 적은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사는 동안 만나는 무수한 사람들 중에 나에게 적대적이거나 내가 적대적으로 대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사소한 벌레들의 귀환을 겪으면서 나의 적이라고 생각하고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모든 대상들이 정말 그런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들은 어쩌면 두려워하거나 혐오하거나 무시할 대상이 아니라 나의 옆으로 왔다가 지나쳐가는 예사스러운 존재일 뿐일 수도 있다. 어느 한 가지 단점을 보고 상대방에게 선입견을 씌운 후 편협한 시선으로 단정짓는 것은 인간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사회나 조직을 분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벌레들을 통해 얻은 사소한 발견에 나는 잠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다고 내가 벌레를 아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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