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 여파로 인해 응급환자 관리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이 응급실에서 폭행이나 폭언 피해를 본 사례가 최근 3년간 21%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급실 폭력이 증가하는 것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12조 (응급의료 등의 방해 금지) 등의 강화 조치만으로는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음이 입증된 셈이다. ‘응급실 안전’을 답보하기 위한 실효적인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인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응급의료종사자가 응급실에서 의료행위와 관련해 폭행 등 피해를 본 사례는 2021년 585건, 2022년 602건, 지난해 707건으로 최근 3년간 지속해서 늘었다. 지난해 응급실에서 벌어진 의료인 폭행 등 피해 사례 707건을 행위별로 보면, 폭언·욕설이 457건으로 65%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폭행 220건, 협박 51건, 기물 파손 34건, 위계·위력 행사가 17건 등이었다.
올해 상반기에 파악된 피해 사례는 360건으로 폭언·욕설이 243건으로 절반 이상이었고 폭행(82건), 협박(21건), 기물 파손(9건), 위계·위력 행사(6건) 순이었다. 응급의료법 12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응급의료종사자의 진료를 폭행, 협박, 위계나 위력, 그 밖의 방법으로 방해하거나 의료기관 등의 응급의료를 위한 시설이나 기물을 파괴·손상하거나 점거해선 안 된다. 응급실 내 폭력이 발생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경우는 응급의료종사자가 진료를 거부하거나 기피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이기도 하다.
응급의료법 12조는 그동안 같은 법 6조의 응급의료종사자는 응급의료를 요청받았을 때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게 돼 있는 조항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관련 지침을 통해 의료인에 대한 폭행이나 협박 등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다면 진료를 거부·기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정과 지침에도 불구하고 응급실 내 의료진에 대한 폭언이나 폭행 등은 쉽사리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의사들은 병원에서 폭행 사건의 피해를 입고도 고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환자나 가족들 역시 ‘병원에서 난동 부려도 특별히 페널티를 받지 않는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대다수의 응급실에는 안전요원을 두고 있으나, 안전요원 운용 역시 허점이 많다.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운 게 현실이다 보니 ‘예방’ 차원의 조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난동 부리는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경찰마저 신고받고도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대부분이다. 환자에 대한 대응은 언제나 복잡해서 함부로 대하거나 물리력으로 추방하거나 했다가는 뒤탈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욕설을 퍼붓거나 폭력을 쓰는 환자나 보호자의 돌발행동에 적절히 대응하는 일은 실제로 쉽지 않다.
문제는 응급실 실정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대응 방안 개선책이 모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지난 2018년 전국 응급의료센터와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전문의 514명, 전공의 375명, 간호사 632명, 응급구조사 119명 등 1640명의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당시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중 55%는 “근무 중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답했다. 또 무려 97%가 폭언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한 달에 1∼2회 폭언을 당했다는 응답(389명)이 가장 많았으며 1주에 1∼2회라는 응답(370명)이 뒤를 이었다. 146명은 매일 1∼2회 폭언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었다.
김미애 의원은 “의료환경 안전에 대한 실태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등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응급의학회가 밝힌 약 6년 전의 응급 의료현장의 위태로운 상황이 지금도 계속되거나 오히려 악화했다는 조사 결과는 걱정스러운 일이다. 의료진이 응급실 근무를 기피하고 떠나는 마당에 근무환경마저 개선되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이 응급의료 위기의 온전한 대안을 찾을 것인가. 응급실 근무환경은 획기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안전요원 확대든 피난시스템 보완이든, 법보다 가까운 주먹을 선제적으로 막아낼 안전장치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