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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앞에서] 이것은 내 몸이지만, 이혼보다는 중혼이 낫지

 

해석자는 자신의 해석이 옳다는 점에 대하여 독단에 가까울 정도의 확신이 있어야 성공하는 듯하다. 마르틴 루터는 독단에 가까운 확신을 가진 해석자였다. 그리스도는 체포되기 전날 밤 떡을 떼어 가리키며 ‘이것은 내 몸이다’(Hoc est enim corpus meum)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분명히 ‘이다’(est)라고 했다. 그러니 성만찬의 떡은 예수의 몸‘이다’. 성만찬의 떡은 떡이면서도 동시에 예수의 몸이다(공재설). 이것이 마르틴 루터의 해석이었다. 울리히 츠빙글리의 해석은 달랐다. 그리스도는 같은 날 밤 이런 말도 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그리스도는 분명히 ‘기념’하라고 했다. 성만찬의 떡은 단지 기념이고 상징일 뿐이다(기념설). 

 

복음서 텍스트의 몇 문장에 대한 해석의 차이 때문에 독일과 스위스의 종교개혁 진영은 분열되었다. 독일의 제후 헤센 방백 필리프 1세는 비텐베르크의 루터와 취리히의 츠빙글리를 중재하고자 했다. 유럽의 구교 세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개혁주의 진영이 단일 대오를 이루어도 세력이 모자란 형편이었다. 필리프 1세의 중재로 루터파와 츠빙글리파는 마르부르크에서 회동을 했다. 그러나 회담은 중간 지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되었다. 츠빙글리는 “모든 것이 당신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라고 개탄했다. 루터는 기어이 식탁에 ‘이것은 내 몸이다’를 적어 놓고 퇴장했다(앤드루 페트그리, 《루터, 브랜드가 되다》, 김선영 역). 

 

다른 한편, 해석자는 개별 사례에 대해 판단을 내릴 때에는 유연하거나 “관용적”일 수도 있어야 성공하는 듯하다. 방금 등장한 개혁주의 진영의 뒷배 헤센 방백 필리프는 정략결혼의 상대방이었던 아내 작센의 크리스티나와 이혼하고 연하의 궁중 시녀 마르가레테 폰 데어 잘레와 재혼하기를 희망했다. 필리프는, 루터가 아닌 루터의 친구, 개혁주의 진영의 또 다른 권위자인 필리프 멜랑히톤에게 편지를 보내 “자문”을 구했다. 내가 아내를 버리고 시녀와 결혼한다면 개혁주의 진영의 해석 방법에 따라 해석을 하더라도 “불법”이겠는가? 

 

법률가라면 멜랑히톤의 곤란한 처지가 이해될 것이다. 클라이언트, 그것도 VIP 클라이언트가 자문을 구할 때에는 많은 경우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되며, 결론은 정해져 있고, 너는 논리만 만들면 된다. 멜랑히톤은 필리프의 질의에 회신하며, 이혼하고 재혼하는 대신 중혼을 하되 이를 숨길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루터는 침묵했다고 한다. 이 스캔들은 두고두고 개혁주의 진영의 약점이 되었다(앤드루 페트그리, 같은 책). 루터가 ‘이혼보다는 중혼이 낫지’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나 유연한 사람들이 기념설은 끝내 관용하지 못하고 기를 쓰고 반대했다.

 

법철학은 정신화한(vergeistigt) 정치이고, 정신의 영역으로 옮겨와 수행되는 정치적 투쟁이라는 글이 눈에 띈다(구스타프 라드브루흐, 《법철학》, 윤재왕 역). 법의 해석과 적용도 마찬가지이다. 법의 해석도 정치적이고, 법의 적용도 정치적이다. 해석자는 완고함과 유연함이 공존해야 성공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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