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전, 이미 ‘올 한 해 가장 미친 영화’라는 입소문과 마케팅 문구가 나올 만큼 화제를 모았던 ‘서브스턴스’는 의도적으로 매우 역겨운 장면들을 다수 배치한 작품이다.
기본적으로는 고어(gore 유혈이 낭자) 한 작품이다. 극 후반부에 가면 화면 자체가 피바다이다. 마치 그 옛날 브라이언 드 팔마가 만든 영화 ‘캐리’(1978)에서처럼 극중 방청객들에게 엄청난 피를 뿌려 댄다. 모두들 피범벅이 된다. 스크린 밖에서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도 자신들이 마치 ‘바케쓰’로 피를 뒤집어쓰는 느낌을 받는다.
게다가 주인공은 괴물로 변하고 보기에도 끔찍한 설정의 장면들을 이어 간다. 어떤 관객들은 이런 등등의 장면들로 구토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영화 ‘서브스턴스’는 매우 호오가 엇갈릴 만한 작품이다. 프랑스의 신예급 감독 코랄리 파르자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프랑스가 여전히 영화적 상상력에서 가장 많이 앞서 나가는 ‘아방가르드’함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코랄리 파르자는 전작으로 ‘리벤지’를 만들었다. 자신을 윤간한 남자 셋을 차례로 죽이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물리적 복수를 꿈꾸는 다분히 강성 페미니즘을 보여 준 작품이다.
이번 영화 ‘서브스턴스’도 다분히 여성적 시선을 지니고 있다. 여성 자신들이 지닌 욕망의 문제를 여성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이야기는 외모와 젊음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 대한 얘기로 시작한다.
주인공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한때 정상의 자리에 올랐던(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을 만큼) 인물이지만 이제 나이를 먹고 현업에서 밀려날 처지이다. 그녀는 모닝 쇼 피트니스 방송을 하고 있지만 방송국 책임자인 하비(데니스 퀘이드)는 그녀를 해고하고 젊은 여성을 뽑으려고 한다.
분노로 치를 떨던 어느 날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의 남자 간호사에게서 서브스턴스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이 물질, 혹은 약을 주입하면 급격한 세포 분열을 일으켜 또 다른 몸이 분리돼 나오되 젊고 신선한 육체가 생긴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젊은 여성으로 분리되고 그 여성이 대신 방송국에서 ‘수’라는 이름으로(마가렛 퀄리) 피트니스 모닝 쇼를 맡게 된다. 이 서브스턴스의 ‘발칙한’ 효과는 단서 조항, 철칙이 하나 있다. 자아는 하나이며 분리 효과는 일주일 씩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엘리자베스는 약물을 투입해 가며 일주일은 ‘수’로 살아갈 수 있지만 이 ‘수’ 역시 일주일 후에는 엘리자베스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간격에는 예외가 없다. 분리된 육체는 서로 일주일 씩만 사용이 가능하다.
그건 마치 신데렐라가 정해진 시간에는 호박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마법과도 같은 것이다. ‘서브스턴스’는 여성들이 지닌 외모 강박증, 혹은 노화에 대한 공포증을 신데렐라 동화에 결합시키되 그것을 공포와 서스펜스의 분위기로 바꾼 셈이다.
또 다른 나 이자 젊은 여자인 ‘수’는 바깥세상이 만들어 주는 유혹(점점 유명해지면서 일이 많아지는 것, 예컨대 보그지 커버 촬영 같은 것, 그리고 남자와의 섹스 등등)을 견디지 못하고 점점 일주일의 시한을 지키지 않게 된다.
그 결과는 또 다른 나인 엘리자베스의 육신이 급격하게 노화된다는 것이며 점점 괴물로 변해 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엘리자베스는 엘리자베스대로 ‘젊어진 나’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육신 변이 과정’의 ‘종료’를 선택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이 여인 둘, 결국 이 여인 한 명의 욕망은 파국을 맞는다.
작금의 프랑스 영화는 ‘트랜스 휴먼’이란 지향점을 향해 ‘냅다’ 달리는 분위기이다. 21세기 프랑스 영화인들은 이제 트랜스’젠더’ 정도는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트랜스 ‘휴먼’, 그러니까 사람이 기계와 결합한다든지(쥘리아 뒤쿠르노의 2021년 영화 ‘티탄’) 이번처럼 내가 또 다른 나와 결합과 분리를 반복하는 얘기를 꿈꾼다.
결과적으로 내가 아닌 또 다른 나, 자아의 복제를 꿈꾼다는 얘기이다. 영화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계속해서 실험하고 있는 셈이다. 세상의 변화를 상상력의 기초에서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여성들의 미(美)에 대한 비틀린 욕망에 대한 얘기라기보다는 그 이면에 깔린 광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광기가 어떻게 인간을 좀먹게 하는가를 점층법적으로 보여 준다. 그 과정을 의도적으로 매우 거칠고 역겹게 보여 준다.
광기라고 하는 것은 한번 빠지면 제어할 수 없는 것임과 동시에 그것이 생리적이거나 본능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꽤나 사회적인 측면이 있음을 고찰한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를 밀어내는 건, 그녀가 젊어지고 싶다는 개인적 욕망에 앞서 젊은 몸매와 미모만을 요구하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속물주의 때문이다.
올해 칸 영화제 각본상을 탔지만 시나리오보다 프로덕션 디자인, (특수)분장과 촬영, 연기 부문에 더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엘리자베스의 하우스 공간, 그녀가 일하는 방송국의 복도 등등은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전혀 없는, 매우 드라이하면서도 극히 인공적인 느낌으로 짜여 있다.
엘리자베스와 수의 몸이 분리되는 욕실은 사면이 흰 색인, 마치 산부인과 분만실의 강한 조명 아래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괴물로 변한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끔찍하며 극 후반 15분은 차라리 저 부분은 편집으로 드러냈으면 어땠을까 할 만큼 처참하고 폭력적이다.
데미 무어는 할리우드 여배우 중 가장 많은 외과 성형수술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영화는 어쩌면 데미 무어 자신의 얘기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과감하게 이 작품을 선택했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투혼의 연기를 펼쳤다. 여우주연상 감이다.
젊은 엘리자베스, 수를 연기한 마거릿 퀄리는 앤디 맥도웰의 딸이다. 데미 무어, 마거릿 퀄리 모두 올 누드의 파격적인 연기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화 ‘서브스턴스’는 올 한 해 최고 걸작의 영화는 아니지만 올 한 해 최고의 도발적인 영화이다. 그건 맞는 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