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진지 2주가 지났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 된 지도 엿새가 지나고 있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경제, 행정, 외교 등 모든 영역에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어제는 금융위기 후 15년 9개월 만에 처음으로 환율이 1450원을 돌파 했다. 금융시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롤러코스터를 타며 국부가 사라지고 있고, 자영업을 비롯한 민생 현장은 이제 비명 지를 힘조차 없어 보인다. 무모한 불장난을 벌인 대통령 탓에 국정은 인공호흡으로 버티는 신세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큰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전 국민이 하나되어 빠르게 위기를 극복해왔다. 권력을 탐하며 싸움질만 하던 정치지도자들도 결정적 위기 순간에는 국민의 뜻에 따르는 결단을 주저하지 않았다. 위기를 곧 기회로 만들었고, 세계는 이런 대한민국의 저력에 감탄했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맞이하고 있는 초현실적 위기는 양상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민들은 빠르게 마음을 모아 국론을 하나로 만들었으나, 권력만 탐하는 정치권은 아직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특히, 12.3 내란 사태에 큰 책임이 있는 집권여당의 행태는 비상계엄 만큼이나 충격적이다.
내란혐의로 탄핵 소추된 윤 대통령과 탄핵에 찬성하며 대국민사과를 한 한동훈 전 대표를 몰아낸 국민의힘 권성동 지도부는 지금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다. 자신들의 위기를 사법절차 방해라는 저열한 방법으로 모면하려는 행태는 마치 팀플레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해제 후 대국민담화에서 “정치적 책임이든 법적 책임이든 피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수사가 시작되자 자취를 감췄다. 대통령 관저로 보낸 수사기관의 우편은 ‘수취 거부’, 대통령실로 보낸 우편은 ‘수취인 불명’으로 배달되지 못했다. 인편으로 전달하려고 해도 대통령 비서실과 경호처가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 출석요구서 뿐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가 보낸 통지서조차 피하고 있다. 검사 출신인 대통령이 수사기관과 헌법재판소의 공적 서류 조차 수령을 거부하고 있는 모습은 참담하다 못해 기괴하다.
더 큰 문제는 국민의힘이다. 하루라도 빨리 국정공백을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는 집권여당이 윤 대통령의 사법절차 방해 전략에 공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권성동 원내대표의 행태는 12.3 비상계엄 만큼이나 충격적이다. 권 원내대표는 17일 “지금은 대통령이 궐위가 아닌 직무정지 상황이기 때문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전까지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권 원내대표의 주장은 2017년 자신이 했던 발언과 헌법재판소에 의해 바로 탄핵됐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퇴임을 앞둔 이정미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임 절차에 대해 “이 재판관 후임을 대법원장이 지명하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하는 절차를 지금부터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기자들이 ‘황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권한이 있느냐’고 묻자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헌법재판관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은 형식적인 임명권”이기 때문에 임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도 공석인 3인에 대해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또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도 같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마은혁 후보자는 “원론적인 입장에서는 국회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선출한 인사라면, 대통령 또는 권한대행으로서는 해당 인사를 재판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헌법 조항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정계선 후보자도 “실질적인 임명 권한은 국회에 있다”며 “대통령의 자의적 임명권 불행사로 인해 재판관 공석이 생긴다면 국민 개개인의 주관적 권리보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의 객관적 성격의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므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에서 추천한 조한창 후보자 역시 “국회에서 특정한 사람을 헌법재판관으로 선출했다면 대통령 또는 권한대행이 그 사람을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헌법 조항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주장이 헌법재판소의 단호한 입장에 부딪히자 권 원내대표는 18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새로운 논리를 꺼냈다. 국정 공백 최소화를 위해 헌법재판소가 이 위원장과 최재해 감사원장 등 주요 탄핵 사건 심리를 우선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회가 헌법재판관을 정하는 건 법적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고 거듭 해괴한 주장을 펼쳤다.
국민의힘을 장악하고 있는 친윤그룹이 권 원내대표를 앞세워 어떻게든 탄핵 심판을 지연시키겠다는 심산이라면 이 쯤에서 멈추길 권고한다. 결과가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친위쿠데타 실패에서 확인했듯이 국민을 배반하고, 헌법과 법률질서를 유린하는 행위는 자멸 뿐이다. 이번 위기의 본질은 헌정질서 파괴다. 따라서 위기 극복의 유일한 방법은 헌정질서 안에서 헌법절차대로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