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의회 의사당에서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하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정책이 대대적으로 뒤집힐 가능성이 커지자 한국 기업들도 글로벌 사업 환경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반도체·자동차·배터리 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관세 인상, 전기차 보조금 폐지·축소 등의 조치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조선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러브콜’을 보낸 만큼 특수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 반도체 업계, 美 보조금 지급 차질 우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반도체법(Chips Act)의 보조금 지급을 조정할 가능성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법을 통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과 보조금 지급 계약을 서두르며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주력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재검토하거나 조건을 변경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중국 제재 강화는 한국 반도체 업계에 반사이익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가 강화되면 중국 기업들의 주요 부품·장비 조달이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 자동차·배터리 업계, ‘관세 폭탄’과 IRA 축소에 긴장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대대적인 관세 인상은 한국 자동차 기업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대미 수출의 전초기지인 멕시코에 공장을 둔 기업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 100여 개의 한국 기업이 멕시코에서 미국 수출용 자동차 및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생산과 고용을 확대하는 ‘현지화 전략’을 강화해 트럼프 행정부와 보조를 맞출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당선인 취임식에 100만 달러(약 14억 7000만 원)를 기부하며 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다.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전기차 보조금 폐지·축소 가능성도 배터리 업계의 핵심 이슈다. 현재 IRA에 따라 최대 7500달러(약 980만 원)의 전기차 세액공제가 지원되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축소하거나 폐지할 경우 현대·기아차의 전기차 판매 전략이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미국에서 생산하는 배터리 셀·모듈에 대해 지급받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도 존속 여부가 불확실하다. AMPC는 배터리 셀 ㎾h당 35달러, 모듈 ㎾h당 10달러를 보조하는 제도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적극 활용해온 지원책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축소할 경우, 미국 내 배터리 공장 투자에도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 조선업, 美 해군과 MRO 협력 기대
반면 조선업계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반사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선박 수출뿐만 아니라 유지·보수·정비(MRO) 분야에서도 한국과 긴밀히 협력하길 원한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 해군의 비전투함 중심 MRO 사업 확대를 추진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한화오션) 등 국내 조선업체들이 미국 방산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 재계, 트럼프와 ‘물밑 접촉’ 강화
한국 재계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맞춰 트럼프 측과의 관계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풍산그룹 회장), 우오현 SM그룹 회장, 허영인 SPC그룹 회장, 최준호 형지 부회장, 김범석 쿠팡Inc 의장 등이 초청받았다.
특히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비공개 만남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K·LG그룹 역시 취임식과 관련해 공식적인 일정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트럼프 측과 물밑 접촉을 이어가며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위기 속 기회 잡아야”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으로 한국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지만, 동시에 대중 제재 강화, 조선업 특수 등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에 맞춰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각 기업이 미국 내 투자 확대, 정부 협력 강화 등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기회를 극대화할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