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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심우도] 불출(不出)의 시대

계엄의 ‘수거 명부’-저 500명에도 못 끼었나요?

 

이럴 때 꼭 나오는 말이 ‘불출’이다. 아마 한자로는 아니 不에 나올 出쯤 되리라.

 

‘계엄당국’이 작성한 것으로도 알려진, 수거(收去)해서 척결(剔抉)할 500명 리스트는 ‘시대적 해석’이 필요하다. 그 명단에도 들지 못한 이들이 요즘 스스로를 냉소적으로 불출이라 부른단다. 이번 시태에만 국한된 것은 물론 아니다.

 

국어사전의 불출(不出)의 뜻은 ‘밖으로 나가지 아니함’이다. 문을 닫아걸고 나오지 않는다는 두문불출(杜門不出)과 이어지겠다. 저기도 못 끼니 마땅히 두문불출해야 할 정도로 못난 사람이라는, 자기비하의 비아냥일 터.

 

차별과 비하의 의미가 포함됐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문구가 붙은 두 번째 설명은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아하, 저 비아냥의 뜻과 상통하는 군.

 

하여간 (중요한) 유명인 리스트다. 그 중에는 당장 체포할 이들도 있다. 처음에 세상(언론)은 수거라는 ‘희한한 용어’에 놀라더니 낱낱의 그 이름들을 보고는 자못 정색하는 표정이다.

 

저 명단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이겠다. 이는 ‘이번 사태의 불출’을 정의하는 (정서적) 기준이리라. MBC 한겨레 경향 등을 참고해 내용을 정리해 보자.

 

노 전 사령관이란 자의 수첩, A부터 D까지 등급 지은 대상 중 A등급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전 의원, 문재인 전 대통령, 유시민 작가 등 정치인들의 이름이 있었다 한다.

 

2023년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을 기각한 유창훈 판사, 순직해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방송인 김제동,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의 이름 등을 비롯해 민주노총·전교조·민변 관련 이름도 있었다는 것이다. 문화 체육계까지 참 다양하다.

 

‘처리 방안'도 기괴(奇怪) 처참(悽慘)하다. 수거집단을 연평도 제주도로 보내며 이송 중 사고, 수용시설 폭파. 외부 침투 후 사살 같은 집단살해의 의도가 담겼다고 MBC는 보도했다.

 

1, 2, 3차 등 ‘500여 명 ’수집‘의 '수거계획‘을 적었다. 계엄 이후 차례로 체포, 처리(처치)한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등에 보고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이 언론들은 전했다.

 

불출이 아닌, 저 500여 명 리스트에 든 분들 등골이 오싹했겠다. 죽었다 살아난 거다. 필자 같은, 불출인 ‘보통 사람들’은 가슴 쓸어내리며 안도하고 (속으로나마 참극 피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미국작가 유진 오닐의 ‘잘못 태어난 자를 위한 달’이란 희곡이 있다. 얼핏 책 목록을 보니 어떤 번역 판(版)은 ‘불출들의 달’이라고 제목이 달렸다.

 

우리 출판계의 아이디어에 무릎을 쳤다. 아, 불출은 ‘잘못 태어난 자’라는 뜻이로구나. 저 냉소적 아이러니, 별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관점에 따라 예외는 있겠으되, 저 500여 명 중 상당수는 우리 공동체의 정직(正直)과 평화를 위해 ‘나’를 흔쾌히 할애(割愛)하거나 심지어 희생까지 하는 선각(先覺)들이다.

 

저기 끼지 못한 ‘다행(多幸)’을 ‘불출’이라 여기는 이 불출의 마음은 여태 복잡하다. 옳은 일을 위해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사회는, 필시 ‘잘못 태어난 사회’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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