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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표징] 각자도생의 진리

 

지난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거의 3개월이 흐르는 현재 대한민국은 민주제도의 후퇴를 목격하고 가슴을 졸이며 대통령 탄핵 과정을 지켜보며 완벽하지 않지만, 그동안 이룩해 놓은 민주제도의 회복을 바라고 있다. 물론 탄핵을 반대하며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며 헌법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세력들도 있긴 하다. 이들의 대부분의 행동양식은 강약약강을 기초로 하기에 정권이 바뀌면 그들의 주류세력은 사라질 것이다. 물론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남아있긴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일련의 사태로 인해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이 더욱 팍팍해졌다는 것이다. 국내 한 일간지가 인용한 미국의 유명 경제지의 기사 내용을 보자:

 

미 보수경제지 ‘포브스’는 지난 6일 ‘윤석열의 필사적인 곡예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살인자(Killer)인 이유’란 제목의 분석 기사에서, 한국 경제에 엄청난 손실을 초래한 비상계엄을 한 마디로 ‘지디피 살인자’로 표현했다. 기사는 말미에 섬뜩한 문장으로 끝난다. “윤 대통령의 이기적인 계엄령 사태가 초래한 값비싼 대가는 한국인 5,100만 명이 시간을 두고서 분할해 지불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현재 우리 사회는 먹고살기 힘든 상황이다. 의료대란(현재 지속 중) 때 나온 유행어, “각자도생”은 현재 진행형이고 앞으로 얼마나 더 연장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자신도 스스로 살 궁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살아날 길을 찾을 수 없다면 어찌해야 할까? 여기서 우리는 더욱 지혜로워야 한다. 일자리가 없고 벌이를 할 수 없다면 역으로 씀씀이를 줄여야 할 것이다. 각자도생의 진리가 여기에 있다. 마치도 겨울에 동굴에 들어가 겨울잠(hibernation)을 자는 곰처럼 가장 에너지를 적게 쓰는 모드로 돌입하는 것도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다.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이런 비상시국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지구상의 자원이 고갈되는 상황이고 세계적 기후재난 중이기에 지구상의 인류 모두가 에너지를 가능한 적게 쓰는 “상시 하이버네이션 상황”으로 돌입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세계체제 안에서 이런 주제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이는 우리 인류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유일한 길일 수 있다.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1845년에서 1847년까지 월든(미국 보스톤 근처,walden pond)의 숲속에서 한 평 정도의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인간이 최소한의 물질로 자급자족하며 얼마나 단순하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지 실험하며 저술 활동을 했다. 이로써 헨리의 사상은 훗날 러시아의 톨스토이,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사실, 인류 역사상 종단, 종파를 막론하고 소위 “수도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그런 단순하고 “청빈한 삶”을 자발적으로 살아왔다. 가톨릭교회의 수도자(사제 아니고 수녀와 수사)들은 3대 서원(Three vows, 하느님 앞에서 하는 약속)을 한다. 청빈, 정결, 순명이다. 이 세 가지 서원의 직접적 목적은 ‘자유’다. 청빈은 물질로부터의 자유, 정결은 사람으로부터의 자유, 순명은 내 의지로부터의 자유이다. 이렇게 세 가지 서원으로 얻은 자유를 가지고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예수의 가르침 혹은 예수가 주신 임무(mission)는 선교, 포교, 전도가 아니다. 예수는 교회를 세우라거나 교회의 멤버십을 늘리라고 한 적이 없다. 예수가 초대 교종(교황)인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강조하며 주신 임무는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이다. 여기서 양은 겁이 많고 약한 존재의 상징이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할 일은 우리 주변에 있는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광화문파의 전씨나 여의도파의 손씨처럼 예수의 이름을 팔아 정치적 세력에 기생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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