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이야기 같아 울고 웃었어요”
문해학교에 다니며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의 실화를 무대에 옮긴 창작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공연장에 실제 문해학교 학생들이 다녀갔다.
지난 19일에 열린 초청 공연에는 전국 문해학교 학생들과 선생님, 문해교육 기관 관계자 총 300여 명이 참석해 특별한 감동을 나눴다.
문해교육이란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부족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성인들이 글을 배우고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국내에서는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인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전국 기초자치단체 및 비영리 민간단체와 협력해 성인 문해교육을 지원하고 있으며, 매년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 초청 행사는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마련한 자리로, 문해교육을 통해 새로운 배움의 길을 걷고 있는 성인 학습자에게 공연을 통해 감동과 희망을 전하기 위해 기획됐다.
많은 학습자들이 공연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관별 10명 한정 선착순 신청을 받아 진행됐으며, 빠른 마감 속에서 문해학교들의 뜨거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극장을 찾은 문해학교 학생들은 자신과 닮은 무대 위 인물들에게 깊이 몰입하여 맞장구를 치고, 웃고,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는 등 생생한 반응을 보였다.
받아쓰기 장면에서 배우들이 “팔십 년 가까이 김치 담그고 자식에 손주까지 다 키우고 오만 것 다 한 이 손인데, 연필만 잡으면 받아쓰기만 하면 와 발발발 떨리노?”라고 노래하자 여기저기서 “맞아 맞아” 하는 공감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극 중 할머니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내는 아부지가 학교 근처도 못 가게 했잖아요. 매일 아침 빨래터에서 동생 교복 빨래하면서 내도 그 교복이 입고 싶은 기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객석에 앉은 할머니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특히 극 중 할머니들이 자신이 쓴 시로 시 낭송 대회에 나가는 장면에서 열띤 반응이 터져 나왔다.
다큐멘터리 PD 석구가 “우리 전국 시 낭송 대회 나가요!”라고 외치는 순간 객석에서 큰 박수가 쏟아졌다. 이어 할머니들이 시 낭송 대회를 위해 교복을 입고 무대에 등장하자, 관객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기뻐하며 환성을 보냈다.

이날 극장을 찾은 문해학교 할머니 학생 대다수는 난생처음으로 뮤지컬을 접했다.
공연을 관람한 한 문해학교 학생은 “이 나이 먹고 공부하는 게 처음에는 창피했는데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학교에 다니니까 이렇게 뮤지컬도 보고 처음 해보는 일이 많아 즐겁다"는 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학생은 “글자를 배워 내 이름을 쓰고 손주와 소통하며 좋아하는 등장인물들 모습이 꼭 내 모습 같아 울컥했다. 우리 이야기를 공연으로 만들어줘서 정말 고맙다”며 벅찬 감동을 전했다.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과 에세이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가난과 성차별 때문에 학교에 다니지 못한 할머니들이 인생 팔십줄에 한글을 배우고 시를 쓰면서 오랫동안 피하고 숨겨왔던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다.
팔순이 넘어서도 하루하루 즐거운 배움을 이어가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선사한다.
특히 실제 문해학교 할머니들이 쓴 20여 편의 진솔한 시가 뮤지컬 넘버로 재탄생해 원작과는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초청 행사를 통해 많은 문해학교 학습자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전한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오는 27일(목)까지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 경기신문 = 우경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