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가 예정대로 발효되면서, 그동안 무관세 쿼터제를 적용받던 국내 철강업계가 큰 위기에 봉착했다.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업계는 다양한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지만,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12일 오전 0시 1분(한국 시간 12일 오후 1시 1분)부터 25%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달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포고문에 따른 조치로, 미국 상무부 하워드 러트닉 장관도 NBC와의 인터뷰에서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한국 철강업체들은 미국과의 협의에 따라 연간 263만 톤(t)까지 쿼터제로 수출해왔으나, 이번 관세 부과로 인해 가격 경쟁력이 악화될 전망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이번 조치로 국내 철강업계가 연간 약 1조 2000억 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철강업계는 급격한 수익성 악화를 막기 위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손실 최소화를 목표로 품목별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며 “미국 내 철강 가격이 계속 변동하고 있어 대응 전략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미국 시장은 국내 철강업체들에게 중요한 수출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이 미국으로 수출한 철강 제품은 48억 3100만 달러(약 7조 402억 원) 규모로, 전체 철강 수출의 13.1%를 차지했다. 미국 시장에서 한국 철강 제품의 점유율도 9.7%로, 캐나다·브라질·멕시코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측은 관세를 피하는 방안으로 현지 생산시설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국내 철강업체들이 당장 미국 내 공장을 신설하기엔 부담이 크다.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현지 제철소 건설을 검토 중이지만, 막대한 투자 비용 대비 수익성이 확실하지 않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관세 부과가 오히려 국내 철강업계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존의 쿼터제가 폐지되면서 수출량 확대가 가능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이 수입하는 2880만 t의 철강 중 2200만 t이 무관세였던 상황에서, 이제는 모든 국가가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하게 됐다”며 “한국 철강업체가 강점을 가진 품목에서는 오히려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 내 현지 공급이 적은 강관류나 유정용 강관 등 고부가가치 품목을 중심으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알래스카 천연가스 프로젝트’도 철강업계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프로젝트는 총 387억 달러(약 57조 원) 규모로, 1300㎞의 가스관 설치가 포함돼 있어 철강재 수요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개별 기업 차원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기업들이 단기적인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결국 정부 차원의 협상을 통해 최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한미 실무협의체를 통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관세 부과 대상 품목에 대한 유예 확대 등을 미국 측과 협의하고 있다”며 “철강·알루미늄 외에도 자동차 부품, 가전 부품 등 87개 품목이 관세 부과에서 제외됐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철강·알루미늄에 국한된 협상보다는 조선·에너지 분야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장상식 무역통상연구원장은 “일본도 철강 관세 유예를 위해 미국을 방문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미국의 협상 전략을 면밀히 분석하고, 조선·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