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는 단순히 오래 가는 종이가 아니라, 그 안에 사람의 감성과 삶의 흔적이 깃들어 있는 재료입니다."
한지 조형예술가 박동삼 작가는 전통 한지의 깊은 역사성과 조형적 가능성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1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화랑미술제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한지로 구현한 세 점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지에 담긴 철학과 현대적 해석을 풀어냈다.

이번 미술제에 출품된 작품 중 첫 번째는 실루엣 작업 '07:58 am', '07:59 am'이다. 현대인이 출근길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담았다는 그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과연 그 안에 인간다움은 어디쯤 자리하고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작가는 "누구나 자신의 모습처럼 느낄 수 있도록 열어두고 싶었다"며 "그래서 눈, 코, 입을 생략하고 실루엣만 남겼다. 보는 이가 스스로를 투영할 수 있도록 열린 구조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실루엣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박 작가는 평소 깊이 있게 탐구해왔다.
그는 "원래 18세기 프랑스의 재무장관 이름에서 유래된 말인데, 복잡한 것을 덜어내고 핵심만 보여주는 방식에서 출발했다"며 "저는 그 절제와 간결함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전시장 한쪽에는 죽은 나무를 형상화한 'A tree in the desert'도 놓여 있다. 사막에서 마주한 죽어가는 나무가 마지막까지 빛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그는 "죽음이 아니라,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식물은 마지막까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한다"며 "인간도 그렇게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다는 본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박 작가의 작업 중심에는 늘 '한지'가 있다. 색을 입힐 수도 있지만 한지 고유의 질감을 살리는 데 집중하고 싶었다는 그는 "빛을 통과시킬 때 느껴지는 감성,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지는 단순히 평면에 머물지 않는다"며 "입체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재료라는 것을 계속 증명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한지는 단지 재료가 아닌 존재의 궤적이다. 조선시대엔 사람을 죽일 때도 한지를 썼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박 작가는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우리의 모든 순간에 한지가 함께 했다. 그런 재료를 단지 미술 재료라고만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앞으로도 한지를 통해 예술과 삶,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싶다고 밝힌 박 작가는 "그 안에서 인간다움과 시대성을 함께 담아내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박동삼 작가는 이번 화랑미술제에 이어 021갤러리 소속으로 미국 시카고 아트페어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 경기신문 = 류초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