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권의 요구불예금 이탈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저점 매수'의 기회를 잡으려는 투자자들이 늘어난 영향이다. 당분간 이러한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로 인해 늘어난 은행의 조달비용이 대출금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15일 기준 요구불예금(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 제외) 잔액은 515조 2186억 원으로 지난달 말(530조 4327억 원)보다 15조 2141억 원 줄었다. 요구불예금은 금리가 0.1%수준으로 낮은 대신 예금자가 언제든지 인출할 수 있는 예금으로, 용도를 정하지 못한 대기성 자금의 성격을 띤다.
이처럼 대규모의 요구불예금이 빠져나간 것은 최근 들어 요동치는 증시의 영향을 받은 결과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따라 증시 변동폭이 커지면서 저점 매수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18억 6676만 달러(약 2조 7000억 원)에 달했다. 국내 증시 개인투자자들의 이달 들어 보름 간 순매수 규모도 5조 원 이상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으로 점쳐지는 만큼 당분간 대기성 자금인 요구불예금의 이동 속도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 금융통화위원들은 모두 지난 17일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3개월 이후 기준금리가 연 2.75%보다 낮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대출금리가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요구불예금이 줄어들면 은행의 자금조달비용이 늘어나고, 이는 변동형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 상승으로 이어진다. 지난 3월 코픽스는 2.84%로 6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글로벌 증시가 대폭 하락하면서 주식 투자 저점 매수를 노리는 투자자들이 자금을 뺀 것으로 분석된다"며 "한은이 추가 금리 인하를 시사한 만큼 이러한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원가성 예금이 줄어 은행들의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면, 코픽스가 오르면서 대출금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