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남준은 말했다. "시간은 느낄 수 있지만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전시 '전지적 백남준 시점'은 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붙잡아 보려는 예술가의 집요한 실험을 담는다.
비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공간에 배치하려는 시도와 추상적 시간을 시각화하려는 집념이 백남준의 인터뷰와 함께 다층적으로 펼쳐진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의 과거 인터뷰 영상과 대표작들을 병치해 그의 사유와 창작 과정을 동시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백남준아트센터가 소장한 2285점의 비디오 아카이브 중 일부를 엄선해 한국, 미국, 일본, 독일 등 다양한 국가의 매체에 등장한 백남준의 인터뷰 장면을 공개하며 영상 속 백남준의 언어와 제스처가 작품의 맥락과 맞물려 새로운 층위를 형성한다.

대표작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의 변화를 13대의 모니터에 담은 작품으로, 순환하는 자연의 시간과 정지된 전자 이미지가 교차한다. 백남준은 이 작품을 통해 ‘추상적 시간’을 포착하고자 했으며, 영상과 인터뷰를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그의 시간 실험이 단순한 시각적 장치가 아닌 사유의 결과임을 드러낸다.

'랜덤 액세스 오디오테이프'는 백남준이 1963년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대표작 중 하나로, 녹음테이프를 벽에 부착하고 관람객이 금속 헤드로 긁어가며 직접 소리를 생성할 수 있도록 한 작업이다. 이 작품은 마그네틱테이프의 물질성과 선형 구조를 임의로 변형하는 실험으로, 이후 비디오 매체로 확장된 시간 실험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천왕성'은 24대의 모니터와 화려한 네온 조명이 구성하는 우주적 조형물로, 백남준의 상상력이 지구를 넘어 우주로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찬란한 영상과 소리가 맞물리는 이 작품은 순간성과 영원성이 교차하는 ‘우주의 시적 초상’을 구현한다.
전시장에는 이 외에도 '촛불 TV', '자석 TV', '참여 TV',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 'TV 정원' 등 약 10여 점의 주요 작품이 출품됐다. 각 작품은 과거 방송국 인터뷰나 다큐멘터리 영상과 함께 상영되어 작동 원리와 제작 배경에 대한 백남준의 설명을 직접 들을 수 있다.

특히 '자석 TV'는 장 폴 파르지에 감독의 영화 '남준, 한 번 더'에 등장했던 실제 작품으로, 전자 신호의 흐름을 변화시켜 감각적인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이 소개된다.
백남준의 시간 실험은 비디오 조각으로도 확장된다. 기술 문명과 예술 상상력이 교차하는 '비디오 샹들리에 No.1', 음악과 비선형 시간을 결합한 'TV 피아노' 등이 그 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백남준의 협업자였던 피터 무어의 사진도 새롭게 공개된다. 'TV 첼로' 공연 장면, 실험 중인 백남준의 모습 등이 담긴 7점의 사진은 예술가의 생생한 현장을 증언하는 아카이브로 기능한다. 마지막으로, 전시는 백남준의 작업실에서 나온 물건들과 '말에서 크리스토'에 수록된 육필 원고들을 통해 그의 사유의 단면을 조명한다.
이와 함께 백남준아트센터는 전시와 연계한 상영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12월까지 매달 한 편씩, 전시에 삽입된 인터뷰의 풀버전과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랜덤 액세스 홀 상영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전시는 2026년 2월 22일까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개최된다.
[ 경기신문 = 류초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