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지역에 순간적으로 폭우가 집중되는 국지성 물폭탄이 반복되면서 끔찍한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돌변하는 상황에 맞춰서 하루빨리 방재 인프라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름철 전국적으로 일정 기간 비가 내리는 전통적인 장마와 달리, 최근에는 스콜성 폭우가 국지적으로 쏟아지는 기상 패턴이 잦아지고 있다. 기존 기준보다 훨씬 강화된 방재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방재 전문가들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지난 20일 경기도 가평군에선 170㎜가 넘는 집중호우로 산사태·급류가 발생해 11명이 사망·실종됐다. 가평군 조종면 십이탄천에서는 편의점과 주택이 함께 있는 2층짜리 건물이 하천 아래로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폭우로 인해 옹벽 위에 지어진 건물이 붕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고를 포함해 현리 일대에는 산사태 피해로 주택과 농지, 축사 등이 토사에 매몰됐고, 주민 66명이 긴급 대피해 이재민이 됐다.
경기 남부 등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잇따랐다. 지난 16일 오산시 가장교차로 인근에서는 수원 방향 고가도로 옹벽 일부가 무너지며 차량이 파손되고 운전자가 사망했다. 해당 옹벽은 이미 지난 2023년부터 지반 침하 등 사고 조짐이 있었음에도 적절한 조치 없이 방치하다가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유사한 사례는 반복적이다. 지난 2022년 성남시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폭우로 인한 지반 침하로 옹벽에 금이 가고, 건물 일부에 균열이 발생해 붕괴 가능성이 제기됐다. 당시 학부모들은 사전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육 당국이 정밀 점검을 시행하지 않아 우려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100년에 한 번 정도 찾아왔던 ‘시간당 100㎜ 이상’의 극한호우가 근년에는 매년 이어지는 상황이다. 경남 산청에서는 800㎜에 달하는 극한호우가 쏟아져 10명이 사망하고 4명이 실종됐다. 사상 초유의 전 군민 대피령이 내려졌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기록적인 극한호우는 충청·호남·영남 지방을 넘어서 수도권까지 덮치면서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기존의 방재 시스템으론 극한호우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폭염이 이어지다가 느닷없이 집중호우가 덮치는 극한 날씨는 이제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됐다. 하지만 우리의 방재 인프라는 이를 도무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전국 대부분의 배수·저류 시설은 30년 또는 50년 빈도 강우량을 기준으로 설계됐다. 언제 어느 곳에 물폭탄이 쏟아질지 모르는데, 이는 허술한 플라스틱 물 대야 몇 개 받쳐놓고 방심하고 있는 허술한 판잣집 꼴과 다르지 않다.
물론 인프라 확충에는 비용과 시간이 든다. 따라서 지역을 가리지 않고 걸핏하면 쏟아져 내리는 물폭탄에 대비하여 범람·산사태·붕괴 등 폭우 취약 지역을 세밀히 예측해 피난하는 예방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한다. 최소한 “수십 년 탈이 없었으니 괜찮겠지”하는 방심부터 걷어내야 한다. 필요하다면 취약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중심으로 경각심 제고 강화[는 물론 피난 훈련도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방재기준을 전면적으로 개선해 시설을 개·보수해야 한다. 가속도가 붙은 기상이변은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여유를 주지 않는다. 언제 어떻게 재앙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비극이 일어날 때마다 며칠 떠들썩하다가 잊어버리거나, 정치인들은 현장을 찾아 사진 찍으며 한마디하고는 민심 동향이나 살피는 방식으로는 이제 안 된다. 기상이변이 몰고 오는 돌연한 물폭탄은 이제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지금 나서서 고쳐야 한다. 더 이상 미적거리면 폭우에 무너지고 부서진 옹벽 바라보며 망연자실하는 참상을 무력한 눈으로 또 지켜볼 수밖에 없다. 대자연의 조화를 아주 거부할 수 없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지혜라도 발휘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 하나도 그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