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서울의 기온이 38도를 넘겼다. 체온을 넘겨버린 기온에 바람도 지친 듯 무더운 오후, 버스 정류장 스마트 쉼터에서 한 할머니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이러다 죽겠다”라고 중얼거렸다. 예전 같았으면 무심하게 흘려들었을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폭염은 이제 어떤 이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기후 변화에 관한 이야기는 그간 주로 북극곰, 해수면, 탄소 배출량 같은 거대한 이미지로 뉴스, 신문, SNS 등지에서 전달되었다. 중요하지만 삶과는 다소 거리가 느껴지는 말들이다. 그러나 어느새 위기는 성큼 다가왔다. 기후 위기는 이제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경로당 에어컨이 고장 났다는 동네 소식, 선풍기만으로 여름을 버티는 혼자 사는 어르신의 이야기, 더위에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이웃. 그리고 그중 다수가 노인이다.
통계는 이 사실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온열 질환 때문에 사망한 사람들 가운데 약 80%가 65세 이상이다. 단순히 불편한 정도를 넘어 더위가 생명을 위협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추측이 아니라 현실이다. 게다가 해가 지날수록 심화하는 기후 위기로 인해 폭염의 빈도와 강도, 지속 기간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이례적인 더위’는 매년 갱신된다.
노인이 더위에 취약한 이유는 자명하다. 체온 조절 기능이 떨어지고, 갈증을 인지하는 감각도 둔해진다. 당뇨, 심장 질환 등 만성 질환이 있는 경우는 더 위험하다.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 요금 때문에 사용을 꺼리기도 한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위급한 상황이 발생해도 도움을 청하기 어렵다. 이 모든 요인이 겹치면 몇 시간의 폭염이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다.
폭염은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모두가 똑같은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젊은이에게는 그저 무더운 며칠일 수 있다. 하지만 노화된 몸에는 치명적인 위협이 되고 때로는 생명까지도 위태롭다. 특히 소득이 낮고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에게 무더위는 기상 이변을 넘어 사회적 위험이다.
물론 정부 차원에서 무더위 쉼터 운영이나 냉방비 지원 같은 대응책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가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주말이면 닫히는 은행, 관공서, 거동이 불편해 쉼터까지 가지 못하는 어르신들, 지원금 신청조차 어려운 홀로 사는 노인. 무언가를 해도 닿지 못하는 사각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모두가 동시에 위험해지는 것은 아니다. 기후 위기는 불공평하게 진행된다. 가장 약한 사람부터 무너진다. 이 점에서 폭염은 죽음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 이상 기온, 열대야, 열섬 현상, 이 모든 단어 속에 갇혀 고통과 위협을 받는 이는 나의 이웃이며 그의 생명이다.
우리는 기후 위기를 미래의 일, 전 지구적인 문제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더위는 이제 현실이 되어 누군가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가장 약하고 힘없는 목소리부터 침묵시키면서.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오늘, 여기, 8월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약한 사람들의 삶을 노리고 있다. 기후 위기를 일상의 위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