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공적 문서는 오랫동안 문체적 관습을 반복했다. 과도한 한자어, 지나치게 긴 복문은 정보의 전달보다 형식의 유지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독자의 이해보다 문서의 권위를, 관계 맺기보다 절차적 안정감을 우선시하는 구조 안에서 글쓰기는 일방적인 통보의 장치로 기능했다. 그러나 글은 말하는 주체가 타자를 어떻게 대하고자 하는지를 드러내는 형식이다. 글의 구조와 문체, 어휘의 선택과 판단의 방식은 그 자체로 세계에 대한 태도이며 공공 글쓰기가 작동하는 윤리적 기반이다. 2024년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문은 이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문도 법률 문서로서의 완성도는 높다. 정제된 논리, 조문과 사실의 정확한 병렬,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강조는 공적 판단의 문서가 지녀야 할 미덕을 충실히 수행한다. 다만 ‘말을 건다’기보다 ‘정리’한다. 문장은 독자를 향해 다가가기보다 정보를 가지런히 배치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관계를 열어두기보다는 서술을 마무리하고 있으며, 말이 독자에게 어떻게 닿을 것인지에 대한 고찰보다는 판단을 오류 없이 나열할 책임이 앞선다. 이와 달리 2024년 선고문은 문장 하나하나가 관계를 전제하여 어휘의
가까운 이웃부터 낯선 이까지, 우리는 타인의 선택과 행동을 관찰하며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 공적인 위치에 있는 인물들에게 쏠리는 관심은 유독 강렬하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 사소한 언행까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사회적 담론으로 변한다. 문제는 이 관심이 일정한 선을 넘어설 때다. 호기심이 감시와 통제의 형태로 변질될 때, 타인의 삶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라 대중이 공유하는 ‘공적 자산’처럼 취급된다. 그 원인을 찾으려면 인간 심리의 깊은 층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타인을 거울삼아 자신을 평가한다. 비교는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열등감이나 질투로 이어진다. 공인의 삶이 더욱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나 닿을 수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동경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흔들릴 때 은밀한 안도감을 느낀다. 성공한 이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자신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특히 공인의 삶은 대중이 공유하는 ‘공적 서사’가 되기에, 성취는 찬양의 대상이 되며 실수는 철저한 반면교사로 소비된다. 관심이 감시로 변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감정의 투영이다. 우리는 단순히 공인을 관찰하는 것이 아
역사책을 살피면, 사회적 혼란과 정치적 불안이 심화하는 시기마다 미신과 초자연적 신앙이 위기를 극복할 방안으로 여겨지곤 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는 이해할 수 있으나 비합리적 믿음이 국가 운영과 정치적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면 그 결과는 대개 국가의 붕괴나 사회적 혼란으로 귀결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타난 사례들은 미신적 사고가 정치에 미치는 위험성을 경고하며 현대 사회에서 이를 배제해야 할 필요를 시사한다. 미신적 신앙은 예언서나 도참서를 통해 특정 인물이나 사건이 도래할 것을 암시하며 통치자와 민중에게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후한 말기 중국에서는 도참 신앙에 힘입어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고, 이는 후한의 몰락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조선 후기에도 민중 사이에서 정감록에 대한 믿음이 퍼지며 왕조에 대한 불안을 부추겼다. 이처럼 비이성적 신앙은 단기적으로 사회적 불안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지만, 일종의 진통제와 같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 혼란을 심화시키고 통치의 정당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신에 의존한 통치의 문제점은 명확하다. 비합리적 믿음은 과
1933년 2월 27일, 독일 국회의사당이 화염에 휩싸였다. 불길이 채 꺼지기도 전에 히틀러와 나치당은 이 사건을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로 몰아갔다. 방화 현장에서 네덜란드 출신 공산주의자가 체포되었고, 그는 단독 범행을 주장했지만, 히틀러는 이를 믿지 않았다. 나치는 “공산당이 독일을 전복하려 한다”는 주장을 퍼뜨렸고, 독일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이 사건은 나치 독일의 독재 체제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나치당은 의회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지 못해 히틀러의 권력 기반이 불안정했다. 히틀러는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을 빌미로 공산당을 탄압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사건 다음 날, 히틀러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바이마르 헌법이 보장한 시민의 기본권을 정지시키는 국회의사당 방화령을 발효했다. 언론, 집회, 출판의 자유는 중단되었으며, 수천 명의 공산당원과 반대 세력이 체포되었다. 이후 나치당은 1933년 3월 총선에서 공산당을 배제하고 선거를 치렀으며, 나치당은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확보했다. 히틀러는 이를 발판으로 의회를 압박해 수권법(전권위임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행정부에 의회의 동의 없이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으며,
교육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해 왔다. 혁신은 교육 패러다임 전환의 중요한 요인이며, 새로운 시대마다 도입되는 새로운 학습 도구는 학습자가 경험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며 학습자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가상현실(VR)은 가상의 환경을 만들어 사용자가 현실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도록 돕는 기술이다. 헤드셋을 착용하면 눈앞에 펼쳐지는 디지털 공간이 현실을 대체하며, 사용자는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거나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몰입감은 학습자가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든다. 예를 들어, 영국의 ‘ClassVR’은 이집트 피라미드 내부를 탐험할 수 있는 VR 콘텐츠를 제공해 학생들이 고대 문명의 구조와 역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존 수업으로는 제공하기 어려운 몰입적 경험을 통해 학습자는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탐구와 이해의 깊이를 더한다. 이러한 몰입적 학습의 흐름은 혁신적인 예술에 의해서도 시도되고 있다. 이머시브 연극(Immersive Theatre)은 VR과 유사한 원리를 통해 교육적 효과를 창출한다. 이머시브 연극은 관객이 단순히 공연을 관람하는 것
202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AlphaFold)는 인공지능(AI) 기술이 과학적 문제 해결에 미친 혁신적 영향력을 상징하는 사례로, 질병 연구와 신약 개발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전 원장 프랜시스 콜린스는 이를 "과학의 판도를 바꿀 만한 업적"이라며 평가했고, 알파폴드가 인간의 직관과 지식을 뛰어넘는 성과를 내자 전문가들은 경악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러한 AI 기술의 발전은 학문적 성과를 넘어 산업에 근본적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을 시사하며, 챗지피티(Chat GPT)와 제미니(Gemini), 소라(Sora)와 같은 최신 AI 도구들이 산업계 전반에 큰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 AI 기술은 데이터 분석과 예측, 의사결정 지원 등 여러 분야에서 인간의 역할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이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특히 AI가 일자리와 사회적 역할, 인간 정체성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는 과거에도 반복된 현상이다. 18세기 증기기관 도입 시기에 기계화로 인해 일자리 감소를 우려한 영국 방직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일으켰던 사례가 그 예다. 그러나 기계화는 결국 대규모 생
사회는 구성원의 행동을 규제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통제 방식을 사용한다. 그중에서도 낙인 효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정 행동이나 특성이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규정되었을 때, 그 행동을 한 개인은 사회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으며 고립되거나 배제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사회적 낙인을 받아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고, 그 정체성은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이를 통해 사회는 규범을 위반하는 행동을 억제하며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한다. 타투(문신)에 대한 낙인 효과는 이와 같은 사회적 통제의 대표적인 사례다.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 타투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여겨졌다. 기독교 전통에서 신체는 신성한 것으로 간주하였고, 타투는 이를 훼손하는 행위로 해석되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범죄자에게 타투를 새겨 그들을 사회에서 격리하는 수단으로 사용했으며, 중세 유럽에서는 기독교가 타투를 이교도의 상징으로 간주해 금지했다. 타투를 금기시하는 행위는 단순히 신체 표식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사회적 규범을 위반한 자에게 상징적 낙인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기독교 사회는 타투를 통해 자신들의 규범과 신앙을 지키고, 집단의 정체성을 보호하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은 인공지능의 딥러닝(Deep learning)을 이용해 영상과 음성을 조작해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가짜(fake)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2017년 외국의 한 인터넷 사이트의 이용자가 유명인의 얼굴을 성적인 영상에 합성한 사건으로 처음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정치적 인물의 조작 영상 등이 등장하며 더 큰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여성에 대한 성적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윤리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딥페이크 기술을 이해하는 데 있어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Simulacrum) 개념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현실과 복제물의 경계가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설명했다. 전통적으로 복제물은 원본을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것이지만, 시뮬라크르는 원본이 무엇인지조차 흐릿하게 만들며 복제물이 독립된 의미를 갖게 되는 현상을 나타낸다. 쉽게 말해, 복제물이 원본을 대신하거나 아예 대체해 버리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광고 속 완벽한 이미지들은 실제 사람보다 더 아름답고 이상화된 모습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간다. 이런 이미지가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그
국제 스포츠 대회 개최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 이는 2024년 파리올림픽과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유치 및 개최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4년 올림픽 유치 당시 파리는 경쟁 없이 단독으로 개최권을 획득했는데 로스앤젤레스를 제외한 다른 후보 도시들이 유치 신청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는 파리와의 협상 끝에 2028년 개최권을 확정 짓게 되었다. 대규모 예산과 인프라 투자에 대한 부담, 개최 후 경제적 효과에 대한 회의론 등으로 인해 많은 도시가 국제 스포츠 대회 유치에 소극적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유치 경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긍정적인 효과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제 스포츠 대회의 개최는 대회 준비를 위한 인프라 구축, 관광객 유입, 스폰서십 및 방송권 수익 등 다양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한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총 2억 2천5백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해 올림픽 역사상 경제적 성공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비용 절감을 위해 기존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고 민간 자본을 적극 유치한 결과였다. 반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15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 대회 후 30년 동안 빚을 갚아야 했다. 2014년 인천 아
기후 변화는 전 세계적으로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그 영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광범위하고 깊다. 많은 나라에서 기후 변화는 전통적인 문화와 관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의 복날 문화다. 복날은 삼복(三伏)으로 불리며, 초복, 중복, 말복으로 나뉜다. 이 기간은 대체로 여름의 가장 더운 시기로 더위를 이기기 위해 보양식을 섭취하는 전통이 있다. 그러나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해 복날의 의미와 보양식 문화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여름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평균 기온이 상승하고 열대야 현상이 빈번해지며 더위가 길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복날을 기준으로 여름의 더위를 이기기 위한 보양식을 준비했지만, 이제는 여름 전반에 걸쳐 더위를 피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특정 기간의 더위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여름 내내 지속되는 더위를 견디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기후 변화는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더위로 인한 탈수나 열사병을 예방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물 섭취와 휴식을 중요시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식습관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예로부터 복날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