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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아의 MZ세대 찍어 먹기] 가을은 고전의 계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사실 책 읽기 좋은 때가 가을만은 아닐 것이다. 여름밤의 땀 냄새 속에서도, 겨울의 긴 어둠 속에서도, 책은 늘 곁에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가을에 독서를 연결 짓는 까닭은 계절이 주는 상징과 생활의 리듬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뜨겁고 분주한 여름이 지나고 땅이 결실을 내어놓은 시기. 바람은 선선하고 하늘은 높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내면을 향해 시선을 자연스레 돌리게 된다. 일 년 동안 정성스레 기른 작물을 수확하듯이 우리는 책 읽기를 가을과 연결해 온 것이다.

 

가을에 읽어야 할 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고전이라는 대답이 떠오른다. 고전은 단순히 오래된 책이 아니라 시간의 검증을 거쳐 여전히 살아남은 목소리다. 수백 년, 수천 년 전의 문제의식이 지금의 독자에게도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인간의 근원적 질문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과 죽음, 자유와 억압, 욕망과 절망, 정의와 불의 같은 주제들은 시대를 초월한다. 현대의 고민이 전혀 새롭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고전은 낡은 기록이 아니라 동시대의 대화 상대가 된다.

 

또한 번역된 외국 고전을 읽는 일은 우리를 넓은 세계와 연결한다. 우리는 모국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고하지만, 고전은 타문화의 사유 체계를 불러온다. 번역은 완벽할 수 없고 그 자체로 하나의 창작이 된다. 그렇기에 번역본을 읽는다는 건 원작의 정신뿐 아니라 번역자가 덧씌운 시대적 감각과 언어의 결까지 함께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다층적인 독서는 단순히 다른 나라 이야기를 아는 것을 넘어, 세계가 어떻게 서로 얽히고 해석되는지를 보여준다. 글로벌 사회에서 필수적인 감각이다.

 

고전을 읽는 일은 지적 자율성 회복이라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오늘날 출판 시장에는 자기계발서나 당대의 담론을 빠르게 요약한 책들이 넘쳐나고 유행한다. 이 책들은 즉각적인 효용을 약속하지만 그만큼 빠르게 낡는다. 반면 고전은 독자 스스로 씨름해야 하는 텍스트다. 문장이 낯설고 서사가 길어 독해가 어렵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사유의 근육을 단련한다. 쉽게 삼켜지는 정보가 아니라 꼭꼭 씹어 소화해야만 내 것이 되는 사유가 되는 것이다.

 

고전은 우리를 낯섦에 노출한다. 현대의 문장은 짧고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전은 때로 장황하고, 표현은 과장되어 있으며, 문체는 굴곡이 심하다. 이 낯섦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어 사고를 흔든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언어의 습관과 가치가 흔들릴 때 새로운 시선이 열린다. 가을의 공기가 차갑게 피부를 스칠 때 느끼는 또렷한 각성처럼 고전은 언어의 불편함을 통해 우리를 깨운다.

 

그러므로 가을에 고전을 읽는 것은 계절적 풍습을 넘어선다. 그것은 결실의 계절에 맞게 인간 정신의 결실을 수확하는 행위다. 외국 고전을 읽는 행위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나드는 다리이며 우리를 보다 넓은 세계와 연결해 준다. 고전을 읽으며 우리는 타인의 시대와 언어를 빌려 자기 시대와 삶을 비춰 본다. 그 과정에서 더 깊고 넓은 인간이 된다.

 

가을 하늘이 점점 깊어지는 지금, 서가 깊숙이 잠든 고전을 꺼내 책장을 넘겨보는 것은 어떨까. 고전은 여전히 살아 있는 대화 상대이며 우리는 그 대화 속에서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수확을 끝낸 들판이 그러하듯 고전은 삶에 또 다른 결실을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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